프란시스 쉐퍼의 서구사상과 문화이해
양성만교수[우석대인문사회학부]
우리 모임의 총주제는 <프란시스 쉐퍼 기념학회>로 되어 있고 나에게 주어진 주제는 <프란시스 쉐퍼의 서구사상과 문화 이해>로 되어 있다. 따라서 글에서는 쉐퍼가 서구사상과 문화를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아울러 사상과 문화에 대한 쉐퍼의 이해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지적하려고 한다.
인간의 삶의 내용과 문화는 사상에 의해서 결정된다
기독교학문연구회에서는 한동안 <성경적 세계관>과 함께 <현대의 세계관>이라는 제목의 세미나를 기독청년들에게 제공한 적이 있었다. <현대의 세계관>에서는 사이어의 <기독교세계관과 현대사상>과 함께 쉐퍼의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교제로 사용하였다. 그만큼 쉐퍼는 이 책과 다른 책에서 "현재의 문화를 형성하였던 역사의 중요한 계기들과 이 계기들을 생겨나게 한 사람들의 생각"을, 즉 서구의 사상과 문화의 흐름을 요령 있게 제시하고 있다.(전집 V, 90쪽) 쉐퍼는 철학 사상을 비롯한 제 학문들의 동향, 및 정치, 예술, 문화 운동 등 여러 문화 현상을 폭넓게 이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해서 이런 현상들을 분석, 비판,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사상과 문화에 대한 쉐퍼의 기본적인 입장은 "역사와 문화에는 흐름이 있다. 이 흐름은 사람들의 사고에 뿌리를 두고 있고 거기서부터 흘러나온다."라는 것이다.(전집 V, 90쪽) 즉 "사람들의 사고 세계에 무엇이 있느냐 하는 것이 그들이 어떻게 행할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한 예를 들자면 피카소의 [아비뇽 처녀들]이라는 그림에서 여인들을 이상하게 기괴하게 그린 것은 파편화된 그의 (혹은 현대의) 인간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쉐퍼는 {존재하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에서 가장 근본적인 물음 세 가지를 다루고 있는데 아마도 이 세 물음의 답변이 인간의 사상의 핵심을 차지하리라고 생각된다. 그 근본적인 철학적 물음이란 인간의 존재 문제 (형이상학적 필연성 - 인간의 인격적 존재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 윤리적 문제(도덕적 필연성 - 인간의 딜레마의 원인은 무엇이며 그 해결책은 무엇인가?), 앎의 문제 (인식론적 필연성 - 내가 무엇을 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이다.({존재하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에 의하면 모든 사람이 철학자는 아니나 대개 철학의 이 문제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답변을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쉐퍼는 모든 사람들은 철학자라고 말한다.(전집 I, 309쪽) 그런데 쉐퍼에 의하면 비록 사용하는 용어와 제공하는 답변이 다르기는 하지만 동일한 문제가 종교에 의해서 다루어지며 기독교만이 이 물음에 대한 바른 답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서구가 작심하고 진리를 성경에서 기꺼이 배우려고 했을 때에는 이 질문들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을 구할 수 있었으며 따라서 이 답에 기초하여 탄탄한 문화를 건설할 수 있었지만 (종교개혁) 성경에서 떠나 자기를 높이고 이성에게서 이 답을 구하려고 했을 때 만족스러운 답을 찾는 데 실패했으며 그 결과 현대의 문화는 파멸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구 사상과 문화에 대한 쉐퍼의 분석은 여러 책에서 다소 각도를 달리하여 여러 차례 반복되지만 {이성에서의 도피}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가장 종합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이 두 책 각각의 부제와 제목은 쉐퍼가 서구의 사상과 문화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에 첨부되어 있는 부제 "서구 사상과 문화의 부흥과 쇠퇴"는 서구 문화가 한 때 부흥했던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쇠퇴하기에 이르렀다는 그의 이해를 보여준다. 다른 책의 제목이 서구 문화가 그렇게 된 이유는 설명해 주고 있는데 그것은 서구인의 어떤 선택에 의해 "이성에서부터의 도피"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서구의 문화는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러 삶의 문제에 대해서 합리적인 대답을 찾는 일에 실패하였으므로 이성으로부터 도피하기에 이르렀고 이제는 합리적인 대답을 찾는 일 자체를 포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구 문화가 어떻게 해서 이성으로부터 도망하기에 이르렀는가? 쉐퍼의 설명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원론적인 사상에서부터 시작한다. 아퀴나스의 이원론은 다음과 같이 도식화된다.
은총, 상층부: 창조주 하나님, 하늘과 하늘에 속한 것들, 보이지 않는 것과 땅 위에서의 그것들의 영향, 통일성 혹은 존재와 도덕에 의미를 주는 보편자나 절대자
자연, 하층부: 피조물, 땅과 땅에 속한 것들, 보이는 것과 인과적 우주에 보통 발생하는 것, 사람으로서의 인간이 땅에서 하는 것, 다양성 혹은 개체적 사물, 개별자 혹은 사람의 개별적 행위들
쉐퍼에 의하면 이런 이원론의 문제점은 이것이 인간의 삶 속에 자율성의 영역을 마련해 주었다는 데 있다. 아퀴나스의 이원론에 의해서 자율성의 베이스 캠프를 마련한 근대인은 그후 자율적 인간을 만물의 중심으로 삼는 인본주의의 영토를 점차 넓혀 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이 자율적이며 사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 확장 전쟁은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를 통해 수행되었다.
근대 초기에 이와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이 있었다. 그것은 참된 종교를 부흥시키려는 종교개혁이었다. 종교개혁은 성경을 통해서 모든 존재와 진리와 가치의 근원이 되시며 계시를 통해 그것을 알려 주시는 하나님께 대해 알 수 있었고, 그 하나님께서 사람을 인격으로 지으셨으며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규범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과 사람이 하나님께 대해, 자신에 대해, 동료 인간에 대해, 또 자연해 대해 참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이런 참된 지식에 근거하여 종교개혁은 종교뿐 아니라 음악, 미술, 정치, 일반 학문에 이르기까지 문화 전반에 걸쳐 건강한 영향을 미쳤다.
물론 종교개혁이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서구가 계속 그 방향으로 전진하여 성경의 진리를 따라 문화를 건설해 나갔더라면 현대는 지금보다는 훨씬 인간적인 문화를 건설했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근대 문화 흐름의 대세를 장악하지는 못했다. 종교개혁과 같은 시기에 르네상스가 진행되었다. 르네상스라는 "재탄생"을 뜻하지만 르네상스 운동의 본질은 인간관의 변화였다. 그것은 인간을 모든 사물의 중심에 두는 운동이었다.
쉐퍼는 근대 이후 서구 문화의 흐름을, 다소 도식적으로, 종교 개혁의 전통을 따르는 흐름과 르네상스-계몽주의의 의한 흐름으로 나누어서 그 결과를 비교한다. 종교 개혁은 국민들에게 참된 자유를 제공했다. 정의의 기준과 법률의 기초를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두었기 때문에 입헌주의로 나갔고 여기에 의거해서 종교개혁의 사람들은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참된 자유를 가질 수 있었다. 르네상스의 인본주의를 계승하여 프랑스 혁명의 정신적 지주를 제공한 계몽주의는 이성, 자연, 행복, 진보, 자유를 자기 이념으로 삼았다. 이 이념들은 철저하게 인본주의적인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 이념의 추구의 결과는 그들의 유토피아적 기대와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계몽주의에서는 국민의 주권, 혹은 일반 의지가 최상의 존재였는데 일반 의지 자체가 고정된 것이 아니고 변하는 것이었으며, 그럴 뿐 아니라 소수의 권력이 얼마든지 일반 의지로 둔갑할 수 있었다. 따라서 여기서는 "무정부 아니면 압제"였다.
쉐퍼는 근대 자연과학이 발흥할 수 있었던 것이 오로지 기독교 때문이었다고 단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근대 과학의 등장은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바와 대립하지 않았으며 사실상 결정적인 점에서 과학혁명은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바에 근거했다고 주장한다. 비기독교인들도 자연 과학 연구에 활발히 참여했다. 그러나 이들은 곧 세계를 열린 체계가 아니라 닫힌 체계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과 사귀는 존재, 또는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일종의 물체로, 진화 과정상의 한 동물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르네상스-계몽주의의 인본주의의 몰락은 철학에서 확실하게 확인된다. 이성이 어떤 타자의 도움 없이 모든 진리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근대 철학의 이념은 데카르트가 근대 철학을 출발시킨 지 몇 백년도 흐르지 않아 곧 위태롭게 되었다. 쉐퍼에 의하면 인본주의 철학의 붕괴는 루소, 칸트, 헤겔, 키에르케고어에게서 여실하게 드러난다. 그 이후 현대 철학은 인간의 삶의 의미와 기준에 관한 합리적인 설명을 포기하고 말았으며 이제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은 비이성의 영역에서 추구된다는 것이다. 그 비이성의 영역은 때로는 예술로, 때로는 한계 체험으로 심지어는 마약으로 나타난다. 중세를 벗어나 근대로 들어서면서 인류는 이성을 통해 모든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대답을 주겠노라고 확언하며 출발하였는데 이제 그들이 도달한 결론은 이성으로부터의 탈출, 혹은 도피가 되었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이성으로부터의 도피에 도달하게 되었는가? 쉐퍼의 진단은 간단하다. 이성이 스스로 자율성을 갖기로 선택하면 이성은 이성으로서의 기능을 못하고 의미와 가치를 제공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이성으로부터 도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으로의 복귀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성이 제 기능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쉐퍼에 의하면 이성이 자율적이기를 포기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계시해 놓으신 진리로 돌아가 거기에 순복할 때 그때에 비로소 이성을 이성으로서의 자기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쉐퍼는 자기의 이런 주장이 종교개혁 당시의 역사적인 사실에 의해서 실증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양성만교수[우석대인문사회학부]
우리 모임의 총주제는 <프란시스 쉐퍼 기념학회>로 되어 있고 나에게 주어진 주제는 <프란시스 쉐퍼의 서구사상과 문화 이해>로 되어 있다. 따라서 글에서는 쉐퍼가 서구사상과 문화를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아울러 사상과 문화에 대한 쉐퍼의 이해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지적하려고 한다.
인간의 삶의 내용과 문화는 사상에 의해서 결정된다
기독교학문연구회에서는 한동안 <성경적 세계관>과 함께 <현대의 세계관>이라는 제목의 세미나를 기독청년들에게 제공한 적이 있었다. <현대의 세계관>에서는 사이어의 <기독교세계관과 현대사상>과 함께 쉐퍼의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교제로 사용하였다. 그만큼 쉐퍼는 이 책과 다른 책에서 "현재의 문화를 형성하였던 역사의 중요한 계기들과 이 계기들을 생겨나게 한 사람들의 생각"을, 즉 서구의 사상과 문화의 흐름을 요령 있게 제시하고 있다.(전집 V, 90쪽) 쉐퍼는 철학 사상을 비롯한 제 학문들의 동향, 및 정치, 예술, 문화 운동 등 여러 문화 현상을 폭넓게 이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해서 이런 현상들을 분석, 비판,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사상과 문화에 대한 쉐퍼의 기본적인 입장은 "역사와 문화에는 흐름이 있다. 이 흐름은 사람들의 사고에 뿌리를 두고 있고 거기서부터 흘러나온다."라는 것이다.(전집 V, 90쪽) 즉 "사람들의 사고 세계에 무엇이 있느냐 하는 것이 그들이 어떻게 행할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한 예를 들자면 피카소의 [아비뇽 처녀들]이라는 그림에서 여인들을 이상하게 기괴하게 그린 것은 파편화된 그의 (혹은 현대의) 인간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쉐퍼는 {존재하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에서 가장 근본적인 물음 세 가지를 다루고 있는데 아마도 이 세 물음의 답변이 인간의 사상의 핵심을 차지하리라고 생각된다. 그 근본적인 철학적 물음이란 인간의 존재 문제 (형이상학적 필연성 - 인간의 인격적 존재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 윤리적 문제(도덕적 필연성 - 인간의 딜레마의 원인은 무엇이며 그 해결책은 무엇인가?), 앎의 문제 (인식론적 필연성 - 내가 무엇을 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이다.({존재하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에 의하면 모든 사람이 철학자는 아니나 대개 철학의 이 문제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답변을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쉐퍼는 모든 사람들은 철학자라고 말한다.(전집 I, 309쪽) 그런데 쉐퍼에 의하면 비록 사용하는 용어와 제공하는 답변이 다르기는 하지만 동일한 문제가 종교에 의해서 다루어지며 기독교만이 이 물음에 대한 바른 답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서구가 작심하고 진리를 성경에서 기꺼이 배우려고 했을 때에는 이 질문들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을 구할 수 있었으며 따라서 이 답에 기초하여 탄탄한 문화를 건설할 수 있었지만 (종교개혁) 성경에서 떠나 자기를 높이고 이성에게서 이 답을 구하려고 했을 때 만족스러운 답을 찾는 데 실패했으며 그 결과 현대의 문화는 파멸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구 사상과 문화에 대한 쉐퍼의 분석은 여러 책에서 다소 각도를 달리하여 여러 차례 반복되지만 {이성에서의 도피}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가장 종합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이 두 책 각각의 부제와 제목은 쉐퍼가 서구의 사상과 문화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에 첨부되어 있는 부제 "서구 사상과 문화의 부흥과 쇠퇴"는 서구 문화가 한 때 부흥했던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쇠퇴하기에 이르렀다는 그의 이해를 보여준다. 다른 책의 제목이 서구 문화가 그렇게 된 이유는 설명해 주고 있는데 그것은 서구인의 어떤 선택에 의해 "이성에서부터의 도피"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서구의 문화는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러 삶의 문제에 대해서 합리적인 대답을 찾는 일에 실패하였으므로 이성으로부터 도피하기에 이르렀고 이제는 합리적인 대답을 찾는 일 자체를 포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구 문화가 어떻게 해서 이성으로부터 도망하기에 이르렀는가? 쉐퍼의 설명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원론적인 사상에서부터 시작한다. 아퀴나스의 이원론은 다음과 같이 도식화된다.
은총, 상층부: 창조주 하나님, 하늘과 하늘에 속한 것들, 보이지 않는 것과 땅 위에서의 그것들의 영향, 통일성 혹은 존재와 도덕에 의미를 주는 보편자나 절대자
자연, 하층부: 피조물, 땅과 땅에 속한 것들, 보이는 것과 인과적 우주에 보통 발생하는 것, 사람으로서의 인간이 땅에서 하는 것, 다양성 혹은 개체적 사물, 개별자 혹은 사람의 개별적 행위들
쉐퍼에 의하면 이런 이원론의 문제점은 이것이 인간의 삶 속에 자율성의 영역을 마련해 주었다는 데 있다. 아퀴나스의 이원론에 의해서 자율성의 베이스 캠프를 마련한 근대인은 그후 자율적 인간을 만물의 중심으로 삼는 인본주의의 영토를 점차 넓혀 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이 자율적이며 사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 확장 전쟁은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를 통해 수행되었다.
근대 초기에 이와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이 있었다. 그것은 참된 종교를 부흥시키려는 종교개혁이었다. 종교개혁은 성경을 통해서 모든 존재와 진리와 가치의 근원이 되시며 계시를 통해 그것을 알려 주시는 하나님께 대해 알 수 있었고, 그 하나님께서 사람을 인격으로 지으셨으며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규범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과 사람이 하나님께 대해, 자신에 대해, 동료 인간에 대해, 또 자연해 대해 참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이런 참된 지식에 근거하여 종교개혁은 종교뿐 아니라 음악, 미술, 정치, 일반 학문에 이르기까지 문화 전반에 걸쳐 건강한 영향을 미쳤다.
물론 종교개혁이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서구가 계속 그 방향으로 전진하여 성경의 진리를 따라 문화를 건설해 나갔더라면 현대는 지금보다는 훨씬 인간적인 문화를 건설했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근대 문화 흐름의 대세를 장악하지는 못했다. 종교개혁과 같은 시기에 르네상스가 진행되었다. 르네상스라는 "재탄생"을 뜻하지만 르네상스 운동의 본질은 인간관의 변화였다. 그것은 인간을 모든 사물의 중심에 두는 운동이었다.
쉐퍼는 근대 이후 서구 문화의 흐름을, 다소 도식적으로, 종교 개혁의 전통을 따르는 흐름과 르네상스-계몽주의의 의한 흐름으로 나누어서 그 결과를 비교한다. 종교 개혁은 국민들에게 참된 자유를 제공했다. 정의의 기준과 법률의 기초를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두었기 때문에 입헌주의로 나갔고 여기에 의거해서 종교개혁의 사람들은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참된 자유를 가질 수 있었다. 르네상스의 인본주의를 계승하여 프랑스 혁명의 정신적 지주를 제공한 계몽주의는 이성, 자연, 행복, 진보, 자유를 자기 이념으로 삼았다. 이 이념들은 철저하게 인본주의적인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 이념의 추구의 결과는 그들의 유토피아적 기대와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계몽주의에서는 국민의 주권, 혹은 일반 의지가 최상의 존재였는데 일반 의지 자체가 고정된 것이 아니고 변하는 것이었으며, 그럴 뿐 아니라 소수의 권력이 얼마든지 일반 의지로 둔갑할 수 있었다. 따라서 여기서는 "무정부 아니면 압제"였다.
쉐퍼는 근대 자연과학이 발흥할 수 있었던 것이 오로지 기독교 때문이었다고 단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근대 과학의 등장은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바와 대립하지 않았으며 사실상 결정적인 점에서 과학혁명은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바에 근거했다고 주장한다. 비기독교인들도 자연 과학 연구에 활발히 참여했다. 그러나 이들은 곧 세계를 열린 체계가 아니라 닫힌 체계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과 사귀는 존재, 또는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일종의 물체로, 진화 과정상의 한 동물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르네상스-계몽주의의 인본주의의 몰락은 철학에서 확실하게 확인된다. 이성이 어떤 타자의 도움 없이 모든 진리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근대 철학의 이념은 데카르트가 근대 철학을 출발시킨 지 몇 백년도 흐르지 않아 곧 위태롭게 되었다. 쉐퍼에 의하면 인본주의 철학의 붕괴는 루소, 칸트, 헤겔, 키에르케고어에게서 여실하게 드러난다. 그 이후 현대 철학은 인간의 삶의 의미와 기준에 관한 합리적인 설명을 포기하고 말았으며 이제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은 비이성의 영역에서 추구된다는 것이다. 그 비이성의 영역은 때로는 예술로, 때로는 한계 체험으로 심지어는 마약으로 나타난다. 중세를 벗어나 근대로 들어서면서 인류는 이성을 통해 모든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대답을 주겠노라고 확언하며 출발하였는데 이제 그들이 도달한 결론은 이성으로부터의 탈출, 혹은 도피가 되었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이성으로부터의 도피에 도달하게 되었는가? 쉐퍼의 진단은 간단하다. 이성이 스스로 자율성을 갖기로 선택하면 이성은 이성으로서의 기능을 못하고 의미와 가치를 제공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이성으로부터 도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으로의 복귀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성이 제 기능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쉐퍼에 의하면 이성이 자율적이기를 포기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계시해 놓으신 진리로 돌아가 거기에 순복할 때 그때에 비로소 이성을 이성으로서의 자기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쉐퍼는 자기의 이런 주장이 종교개혁 당시의 역사적인 사실에 의해서 실증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출처 :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
글쓴이 : 바라보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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