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스크랩] [로마역사기행] 네로의 방화죄 뒤집어씌우기

김믿소사 2007. 7. 7. 16:57


 

 

 

 

 

 

 

 

 

 

 

 

 

 

 

 

 

 

 

 

 

 

 

 

 

(로마지도)

 

서기 64년 7월 중순. 로마시내 전차경기장 옆 상점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고온건조한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 불길은 삽시간에 경기장을 삼키고 구릉지대를 너머 시내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방화벽이 될 만한 담장이나 큰 길이 없어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화재는 일주일 이상 계속됐고 14개 구(區) 가운데 무사한 구는 4개뿐이었으며 3개 구는 완전히 폐허로 변했다.

인명과 재산 피해가 얼마나 심했던 지 화마가 지나간 후 로마인들은 피해지역 경계선에 제단을 만들어 불카누스를 달래는 불카날리아 제식을 치를 정도였다.

불카누스는 그리스의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와 동격인 불의 신이다.

 

안찌오 바닷가 별장에서 여름 휴가를 즐기던 네로는 한밤중에 급보를 받고 서둘러 로마로 돌아왔다. 팔라티노 언덕의 황궁마저 화마가 휩쓸고 지나가 그 자신도 피해 당사자였다.

네로는 캄포 마르찌오 벌판과 바티칸 별궁 정원에 이재민을 수용하고 신속히 물자를 조달 하는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구호조치에도 불구하고 워낙 피해가 심각해서인지 악성 루머 가 퍼지기 시작했다.

 

네로가 궁전을 새로 짓기 위해 불을 질렀다거나 새로운 도시를 세워 자기 이름을 붙이려 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 는가 하면 더 나아가 네로가 궁전 안 가설무대에 올라가 불타는 로마를 바라보며 자작시 ‘트로이 몰락’ 을 읊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하지만 모두 근거가 없는 것들이었다.

 

네로에 비판적인 타키투스의 글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화재 발원지 무대가 되었다는 궁전의 위치 등도 소문과 아귀가 맞지 않는다.

여기에는 한 가지 석연치 않은 상황이 있다.

6일째 되는 날 불길이 사그라드는 것 같더니 되살아나 하루를 더 태웠는데, 공교롭게도 그 지역에 근위대장 티겔리누스의 저택이 있었다.

황제가 소문대로 로마를 완벽히 파괴하기 위해 측근인 티겔리누스의 집을 태워 불길을 되살리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받을 만했다.

소문은 더욱 빠르게 퍼져나갔다.

소문이 소문으로 끝나지 않은 이유는 화재 후 바로 네로가 추진한 재건사업 때문이었다. 네로는 4개 언덕에 걸친 대규모 궁전을 건축하고 로마시를 대리석과 벽돌의 도시로 바꿔놨다.

 

자신에 대한 집요한 소문으로 곤경에 처한 네로가 택한 희생양이 바로 기독교도들이었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일부 극단적인 기독교도들의 소행이라는 소문도 나돌았을 정도로 당시 기독교도들에 대한 평판은 좋지 않았다.

그 이유는 로마시에 갓 들어온 신흥 종교에 대한 무지에 있었다.

교리를 모르는 로마인들은 기독교도들이 행하는 성찬식의 의미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피와 살을 먹는다는 문구를 말 그대로 받아들였다.

기독교도들은 인육을 먹는 광인집단이었고 은밀한 장소에 모여 예배를 보는 데다 서로 형제,자매라 부르는 부도덕하고 음탕한 자들이었다.

편견이긴 했지만 기독교도들이 부정적인 모습으로 각인돼 있었기 때문에 네로는 그들에게 방화죄를 뒤집어씌울 수 있었다.

첫 기독교 박해는 훗날 유일신 사상을 못마땅해 하며 조직적으로 가 해진 박해들과는 달랐다.

오로지 화재를 둘러싼 악성 루머를 잠재우 려는 정치적 사건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결국 사도 바울과 베드로가 순교하면서 로마는 가톨릭의 본산으로 자리잡게 됐고 네로는 기독교 를 박해한 폭군이란 오명을 쓰고 말았다.

 

〈신상화/ 로마사학자〉

출처=뉴스메이커

출처 : 하나님(Logos)의 존재와 속성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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