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셀 그룹의 본질
셀 그룹의 본질
I. 소그룹이란 무엇인가?
셀 그룹이라는 말과 소그룹이라는 말은 그 본질에 있어서 대동소이하다. 다만 셀 그룹이라는 단어가 셀 그룹 교회 모델의 경우 보다 전문적 어의를 지니게 되며 그 것은 "교회 속의 작은 교회"로서의 의미를 함축한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셀 그룹은 소그룹이며 소그룹이 가지는 특성과 기능을 동일하게 가지면서 그 위에 교회로서의 본질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면 적절하다. 따라서 소그룹의 특성이나 원리 등을 연구하는 것은 셀 그룹을 이해하고 운영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한편, David W. & Frank P. Johnson은 그룹의 요건들로 상호작용, 상호의존성, 소속감, 공통흥미, 상호 영향, 그룹 속에서의 보장, 그리고 공동목적의 추구를 들고 있다. 이러한 요건들은 그룹 구성원간의 관계와 심리적 상황을 중심으로 제시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룹 또는 소그룹에 대한 학자들의 정의는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B. Aubrey Fisher는 그룹을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개인의 모임"이라고 정의하면서 감정적 차원의 깊이 있는 교제라는 측면을 강조했다. 이와 같이 그룹 또는 소그룹이 가지는 구성원의 관계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함을 보여준다. 기독교교육학에서의 소그룹 개념은 기독교교육의 실천의 장(Field)이며 교회 신앙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신자들의 작은 모임으로 이해할 수 있다.
II. 소그룹의 성서적 기초
1. 구약성서의 뿌리
소그룹 사역의 뿌리는 하나님의 본질 자체로 거슬러 올라간다. Elohim이라는 단어 자체가 복수형태라는 사실과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의 본질은 소그룹의 뿌리를 이룬다(Mcbride, 14). 또한 아담으로부터 시작되는 가족 단위 역시 소그룹이며 이러한 가족 단위는 인간사회 단위의 기본을 이루고 있다. 국가로서의 이스라엘 그룹은 다시 12 지파로 나뉘어지며 이 지파들은 다시 족장으로 불리어지는 가족 단위로 나뉘어진다. "요셉의 가족"(창 50:8) 또는 "바로와 그의 가족들"(신 6:22)로 불리어지는 단위가 특징적인데 이는 가족들과 종들의 여러 세대로 구성된 가족단위였다. 개별 가족단위는 유대사회의 핵심이었다.
2. 소그룹 지도자로서의 예수님
예수님이야말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그룹 지도자였다. 소그룹 리더로서의 그분의 모습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1) 예수님은 지상 사역을 제자들로 구성된 "소그룹"을 형성함으로써 시작하셨다(마 4:18-22;
눅 6:13-16)
2) 예수님은 대 그룹과 소그룹 사역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셨다(막 12:37; 마 26:6)
3) 예수님의 대그룹 사역은 그 전후에 소그룹 사역에 이은 것이었다
4) 예수님은 대부분의 시간을 소그룹과 함께 하셨다
5)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은 조직이 아닌 관계중심이었다
6) 예수님은 영적 진리, 태도, 행동 등을 가르치고 모본을 위해 소그룹 상황을 사용하셨다.
7) 예수님은 소그룹을 통하여 지도자들을 훈련시키셨다.
3. 소그룹 맴버로서의 성령님
소그룹 리더로서의 역할을 감당함에 있어 리더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그룹 속에 함께 계신 성령님의 존재이다. 리더의 역할은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사역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성령님은 내주하신다(롬 8:9-11). 그분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곳에 항상 함께 하신다
2) 성령님은 인도하신다(요 16:3). 그분은 모든 그룹활동을 인도하시며 지도하신다
3) 성령님은 가르치신다(요 14:26).
4) 성령님은 책망하신다(요 16:8).
5) 성령님은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롬 8:26).
6) 성령님은 능력을 주신다(고전 12:11)
7) 성령님은 통일시키신다(엡 4:3)
4. 초대교회에서의 소그룹
초대교회에서의 소그룹은 가족단위의 유대 전통을 이어받았다. 가정이 신앙을 훈련시키는 기초였던 유대인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초대교회 역시 가정에서 모이기 시작했으며 가족단위의 개종에 관한 기록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 있던 교회(롬 16:3-5), 빌레몬의 집에 있던 교회(2절) 등과 같은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갈라디아서 6:10과 에배소서 2:19에 나오는 "믿음의 가정들"이라는 표현은 소그룹의 가정이 교회로 사용되거나 소그룹이 교회에 차지하는 비중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딤전 3:15).
베드로도 "하나님의 집"이라는 표현과 "영적 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벧전 4:17; 2:5). 바울과 베드로 모두는 교회를 영적 가족이며 그리스도의 몸으로 보았다. 예루살렘 교회는 각 가정에서 모여 떡을 떼고 기도하며 교제하는 일을 힘썼는데 이는 가정이 개방되어 결코 크지 않은 숫자의 교인들이 다수의 단위를 이룬 교회 형태였음을 보여준다(행 2:42-47; 5:42; 20:20).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 형태는 초대교회로부터 콘스탄틴 황제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감에 따라 교인들은 가정에 모이는 대신 예배당 건물에서 모이기 시작했으며 결국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집합체라기보다 건물로 이해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오해는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남아있다. 그 이후 교회 역사 전체를 통해 분파형태의 기독교도들이 소그룹을 통한 영적 갱신을 위해 노력해왔으나 그러한 고질적 전통에 대한 근원적인 개혁을 시도한 종교개혁시대까지 큰 변화 없이 지속되었다.
5. 소그룹 운동의 역사적 증거들
보헤미아 형제단: 이들은 의식이나 전통보다 예수를 믿는 산 믿음과 코이노니아를 강조하는 자들의 소그룹을 형성하여 이 소그룹을 '형제의 연합'(brotherly harmony)이라 부르고 보헤미아에 정착한 후 다시 '형제들의 연합'(unitas fratrum--The Unity of the Brethren)이라 불렀다. 여기서의 연합이란 공동체를 의미했다. 루터는 이들을 자신의 세대 이전의 실제적인 개혁자들이었고 믿고 "사도시대 이후 이와 같은 사도적인 모임에 가깝게 접근한 교회가 일어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Trudinger, 40)
모라비안 교도들: 이들은 보헤미아 형제단의 직접적인 후손들로서 18세기 초에 진젠도르프 백작이 준 땅에서 헤른후트(Hernhut--주님의 파숫군이라는 의미)라는 공동체를 이루어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성숙해갔다. 이들은 유럽 일대에 엄청난 영적 영향력을 끼쳤는데 그 원동력은 끊임없이 작은 그룹을 이용하여 서로간의 관계의 중요성에 주의를 집중한데 있었다. 그는 코이노니아를 교회의 제 3의 성례전의로 추가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 코이노니아를 위한 작은 그룹을 반덴(banden)이라 불렀다. 8-12명으로 구성된 '밴드들'(bands)에 관한 한 모라비안 역사가의 언급은 주목할만하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영적 생활과 연합을 새롭고 깊게 하기 위해 추구하며 도 달하고자하는 셀 모임들은 진젠도르프 백작이 이끄는 정착자들로 구성된 헤른후트에서 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모라비안들은 세계 도처에 이러한 셀 모임들을 조직해야만 했 다
진젠도르프의 젊은 시절에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 북서유럽의 '경건주의자' 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신앙생활 핵심은 '경건한 모임'(collegia pietatis)라 불리우는 작은 모임으로서 개인 집에서 10명정도가 모여 예배드리며 교제하는 것이었다. 이 모임의 지도자인 아우그스트 프랑케와 함께 살면서 진젠도르프 백작이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요한 웨슬레: 웨슬레는 회심은 물론 전도의 열정에 있어서 모라비안 교도들의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수 많은 회심자들을 양육하고 제자화 하기 위하여 8-12명으로 구성된 '조모임' 또는 '양육셀모임'을 만들어 자신의 부흥운동의 기둥으로 관리하며 살폈다(Trudinger, 39-43). 후에 이 모임은 감리교단으로 발전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감당했으며 '속회'로 불리었다. 한국교회의 구역예배가 바로 여기로부터 왔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현대제자훈련운동의 영향으로 평신도의 사역이 크게 자극받게 되었으며 이러한 자각운동은 새로운 가죽부대운동으로 그 방향을 잡고 지난 60년대 이후 교회의 구조를 바꾸는, 이른바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하면서 셀 그룹 교회모델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모든 교인들이 하나님의 복음의 사역자라는 자각은 교회로 하여금 그러한 자각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을 모색하게 만들었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가 바로 셀 그룹 교회인 바 앞으로 이러한 노력은 계속적으로 확산될 것으로 믿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