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 사람(막 12:28-34)

김믿소사 2007. 6. 7. 20:53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 사람

(막 12:28-34)

 

오늘 본문 말씀은 성경의 계명 중 가장 첫째가 되는 계명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 서기관과 예수님이 주고받은 대화의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기를 바라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두 가지로 나타나 있습니다. 첫 번째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음만 다하는 것도 힘든데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애쓰고 힘을 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고 서기관도 이 문제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가장 으뜸이 되는 계명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가운데 재미있는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이 서기관에게 지혜롭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무엇을 바라고 계시는지 서기관이 제대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이것을 알고 있다고 지혜롭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우리 인생의 목표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아파트를 사고팔고 재태크를 통해 재산을 늘리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출세가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내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서기관은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알았던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네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신 것입니다. 쉬운 성경에 보면 너는 하나님 나라에서 가깝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멀지 않다는 것은 가깝다는 뜻이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떤 나라일까요? 우리는 죽어서 가는 천국을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눈물도 없고 사망도 없고 배고픔도 없는 나라라고 말합니다. 아주 행복한 나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솔직히 이야기해서 하나님 나라가 우리가 사는 세상과 같은 곳이라면 가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정말로 행복이 넘치는 나라이니까 하나님 나라에 가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내세의 하나님 나라뿐만 아니라 현세에서의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삶이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서기관이 세상에서 행복하고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행복한 삶에 가장 접근해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주일에 교회 나오는 것 목사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닙니다. 극히 이기적이지만 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저 세상에서도 행복하게 사는 것이 예수를 믿는 이유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점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정말 행복한가?’ 하는 심각한 질문을 때때로 스스로에게 해 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기 때문에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하고, 봉사하는 것을 힘들어 하고, 헌금하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힘들게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를 잘못 믿는 사람입니다. 만약 예수를 열심히 믿는데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않다면 그 사람은 예수를 잘못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잘 믿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70-80년 산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하루를 살아도 일 년을 살아도 10년을 살아도 내가 정말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인생이 행복한 인생입니다.

미국 타임지 편집장이었던 리차드 스탠걸이 지은 ‘아부의 기술’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부에 대해 좋지 않은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아부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죽어도 아부를 못한다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부’야 말로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부는 상대방을 즐겁게 하고 나를 즐겁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부는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부를 잘못하면 정말 좋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자연스럽고 세련된 아부를 하기 위한 25가지 구체적인 기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부의 대상이 여럿이 있습니다. 미국의 훌륭한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아부를 잘해서 훌륭한 대통령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에게 아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아부를 받기 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아부를 받을 때 행복하고 흐뭇해하시는 것을 우리는 성경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구약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아부의 말로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아부를 심하게 한 사람은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왕은 힘과 권세와 명예와 물질 그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인 것처럼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다윗을 축복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 불평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만한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수십 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일천번제를 드렸던 솔로몬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일 동안 예배를 드렸는지 천 마리의 양과 소로 예배를 드렸는지 성경학자들의 해석이 각기 다르지만 어찌되었든 이것은 하나님께 아부라는 것입니다. 솔로몬도 이것을 진정으로 한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한번 드렸는데 하나님의 응답이 없으니까 열 번 드리고 다시 백 번 드리고 다시 천 번을 드렸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천 번을 드렸을 때야 만족하고 흐뭇해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적절하게 아부한 사람이 하나님께 어떤 보상을 받았는가 하는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를 우리가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만큼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부라고 할 만한 수준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만족하시게 될 때 우리가 행복해지고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만족하실 때 내 삶이 행복해지고 넉넉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하는 아부는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이웃 사랑도 아부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보통 우리의 이웃 사랑의 기준은 내 기준입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면 되었지 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이것도 잘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나에게 하듯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칭찬할 때 내가 다른 사람에게 받고 싶은 만큼 칭찬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할 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만큼 넉넉하게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할 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고 싶은 만큼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감사할 때 내가 다른 사람에게 감사받고 싶은 만큼 넘치게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이웃 사랑의 기준입니다. 아부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다른 사람이 감동하고 기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행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내가 나 스스로 행복해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날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해 진다는 것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행복하실 때 나도 행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006년 미국의 데일지 미러 라는 집지에서 우리의 기억 속에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생각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 여인은 바로 벨기에 출신의 오드리 헵번이라는 영화배우였습니다. 오드리 헵번은 참으로 아름다운 여배우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기억되는 것은 그녀의 미모 때문이 아니라 그 말년의 생이 참으로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자기가 가진 재산을 다 바쳐서 굶주린 어린이들을 위한 자선 사업을 하다가 1993년 사망했습니다. 생전에 사람들이 그녀에게 어떻게 아름다운 미모를 간직할 수 있는가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매혹적인 입술을 갖고 싶으면 아름답고 친절한 말을 하십시오. 사랑스러운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의 좋은 점만을 보십시오.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다면 배고픈 사람과 음식을 같이 나누십시오. 매력적인 걸음걸이를 갖고 싶다면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려서 인생을 걸어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이 아름다울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인생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금년 일 년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행복한 삶으로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는 그런 귀한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출처 : 낙송의 집
글쓴이 : 낙송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