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플러스 1의 삶(마 22:34-40)

김믿소사 2007. 6. 7. 20:53

플러스 1의 삶

(마 22:34-40)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성경의 대명제입니다. 구약 39권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딱 두 마디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귀한 많은 말씀을 가르쳐주셨지만 예수님의 말씀도 따지고 보면 이 두 말씀에 귀착됩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을 사랑은 성경 66권을 요약한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직접 여러 번 확인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서 율법교사는 예수님에게 “율법 중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들의 강령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여러 율법이 있고 수많은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사실은 이 두 마디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교회에서 매주일 다른 제목으로 다른 본문으로 설교를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여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최근에 대구 성서 아카데미 원장인 정형섭 목사가 우리나라 대교회의 목회자 14분의 설교를 비평한 책을 내서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뿐만 아니라 일반 신문과 인터넷에서도 흥미롭게 보도되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세계에서 제일 크고 가장 많은 신도들이 다니고 있는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 중 삼박자축복은 기독교의 진리에 어긋나는 위험한 것이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또한 두레교회의 김진홍 목사의 설교는 무협지처럼 영웅들이 활약하고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다고 혹평을 했습니다. 새문안 교회의 이수영 목사님의 설교는 기독교신앙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일보 사설과 같다고 비평했습니다. 구로동의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는 설교라기보다는 대중선동이라고 말했습니다. 설교의 주제와 내용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관한 것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재미있고 감동적인 설교라 할지라도 설교의 내용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근본적인 가르침에 접근해 있지 않으면 그것은 교양강좌요 만담이요 개그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인생이 힘들고 고달프다고 생각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바라는 삶이 아닙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그 지으신 모든 것이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삶이 이렇게 힘들고 고달픈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하나님은 우리들이 다시 행복하게 살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신학자들은 이것을 가리켜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첫째로 하나님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이 세상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하늘나라에서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에덴동산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서 먹고 입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공중의 새와 짐승들의 이름을 지어주고 뱀과도 대화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마음이 쏠리고, 세상에 가까워지고 선악과나무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하늘나라에서 사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관심을 갖게 되고 마음을 빼앗겨 세상에 얽매이게 됩니다. 이것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일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여기에서 헤어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다 이해하시고 인정하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플러스 1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한 가지 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 하나님 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식사기도를 합니다. 우리가 제일 먼저 배우는 기도가 이 식사기도입니다. 기도의 시작이라 할 것입니다. 저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식사기도만 제대로 해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금년 일 년 우리 교회 교인들과 식사기도 잘하기 운동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식사는 우리 육신이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세상의 일입니다. 그러나 식사를 하기 전에 세상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일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음식을 먹고 더 건강하게 하나님을 위해 일하게 해달라는 식사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세상일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밥을 먹는 것은 세상의 일이지만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처럼, 사업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직장에서 일할 때도 공부를 할 때도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일을 세상일만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일을 세상일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세상일은 세상일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과 관계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 때 우리의 삶이 행복한 것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제 삶에 가장 즐거운 때가 두 번 있습니다. 잠잘 때와 밥 먹을 때입니다. 잠자리에 들어 오늘 하루를 무사히 마쳤구나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밥을 먹을 때 가장 즐겁습니다. 특별히 저의 세대는 밥을 못 먹어 배고팠을 때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식탁에 쌓인 맛있는 음식을 볼 때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일로 생각하면 피곤하고 고달픈 노동일뿐입니다. 더군다난 요즈음 현대인들은 끝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으로 인해 감사와 찬양을 드릴 때가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이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행복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과의 경쟁 속에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생각할 때 감사하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세상의 일을 세상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먼저 생각할 때 우리의 인생이 행복해질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웃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이기적입니다. 나밖에 없는 것처럼 나 중심적으로 살아갑니다. 특별히 우리가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기보다 내 이익만을 챙기기에 급급합니다. 조금도 양보하지 않습니다. 부모자식 간에도, 부부간에도 그렇습니다. 결국은 나 혼자 사는 것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웃사랑은 모든 일에 나 말고 하나를 더 생각하는 삶을 말합니다. 플러스 1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위해 건강을 위해서 밥을 먹지만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도 세끼 양식이 없어 굶주리고 있는 배고픈 사람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맛있는 음식이 식탁에 오르기 까지 수고한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비록 내가 혼자 앉아 식사를 하지만 가난한 사람, 배고픈 사람을 초대하여 내 옆에 앉혀야 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맛있는 음식이 식탁이 여기에 오르기까지 수고한 사람들을 내 옆에 앉혀야 합니다. 나 혼자 앉아있는 식탁이 아니라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옆에 앉아 있는 식탁이 되어야 합니다. 플러스 원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집에 들어가 편히 쉴 때마다 사택을 마련해 준 갈릴리교인들에게 감사합니다. 저 혼자 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같이 앉아 있는 듯한 생각을 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집에서도 하나 더 생각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집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야 할 집을 생각해야 합니다. 집안 살림이 어려울 때 우리 살림뿐만 아니라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라의 살림은 어떤가, 교회의 살림은 어떤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 살림뿐 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내 살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살림도 같이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플러스 1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아직도 20년 구로구청 4거리 3층 냄새나는 교회, 여름이면 견딜 수 없는 열기 속에서 지냈던 교회를 생각합니다. 우리는 편한 자리에서 예배드리지만 아직도 어려움에 처해 있는 많은 교회들을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웃 교회에서 교인들을 빼앗아 오는 일을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우리 교회만 생각하지 말고 한국교회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만 잘 될 것을 생각하지 말고 이웃교회도 잘되고 한국 교회 모두가 잘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 간에 하나 더 생각해야 합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 인생의 문제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문제도 생각해야 합니다. 플러스 1을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이고 이것이 이웃사랑입니다.

직장에서 일을 하고 월급을 받을 때 여기에 우리 식구들만의 양식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난한 사람의 몫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 본문 역대상 4장 10절 말씀은 많은 사람들이 컬러링으로 사용하는 야베스의 기도라는 아주 유명한 기도입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아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개역 성경에 보면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라는 말씀이 나의 지경을 넓혀주시고 라고 기록되었으며 쉬운 성경에는 나에게 땅을 더 많이 주시옵소서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쉬운 성경에서처럼 나에게 땅을 더 많이 주시옵소서 라는 말씀으로 컬러링을 했으면 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말씀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파트 평수를 넓혀주시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내가 이 땅에 살지만 이 땅이 나의 지경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내 지경을 저 하늘나라에 까지 넓혀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이곳에 살지만 나의 지경을 저 먼 미래에 까지 넓혀달라는 것입니다. 한국에 살지만 내 지경을 아프가니스탄, 가나, 캄보디아, 베트남 등 저 멀리 세계 곳곳으로 넓혀달라는 것입니다. 내 이웃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내 지경을 넓혀달라는 것입니다. 갈릴리교회 만이 아니라 이웃교회까지 한국교회까지 모든 세계의 교회까지 내 신앙의 지경을 넓혀주시며 교회만이 아니라 온 사회, 우리나라의 역사에까지 우리의 지경을 넓혀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기도로 우리의 지경을 넓힐 수 있습니다.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이웃을 향한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지경을 이웃에게까지 넓힐 수 있습니다.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나라를 위한 기도를 통해 나라에까지, 우리 교회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이웃교회와 한국의 모든 교회와 세계 교회를 위한 기도를 통해 우리의 지경을 넓힐 수 있습니다. 우리의 봉사와 헌금와 선교를 통해서 우리의 지경을 넓혀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삶이 내가 처한 지금 이곳에서의 나의 삶에만 머무르지 않고 플러스1으로 내 지경을 넓혀나가야 합니다. 플러스 1을 생각하는 귀한 삶을 살 때 우리의 삶에 행복과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가장 어리석고 불행한 사람이 혼자 밥 먹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식탁에 배고프고 굶주린 사람을 초대해야 합니다. 나를 위해 땀흘려 수고해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준 사람, 모든 사람을 초대해서 함께 식사를 해야 합니다. 그런 식탁이 복이 있는 식탁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밥을 먹을 때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이 귀한 축복이 금년 한 해 여러분의 삶 모두에게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출처 : 낙송의 집
글쓴이 : 낙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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