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스크랩] 성탄절과 캐롤의 유래

김믿소사 2007. 7. 7. 16:51
서남 아시아에 위치한 Armenia 라고 하는 작은 나라는 현재 러시아, 터키, 이란 등 세 나라로 분할되어 있지만 옛날에는 독립된 기독교 왕국이었다.
Armenia를 제외한 세계의 모든 교회는 12월 25일을 성탄절 또는 크리스마스로 지키고 있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기독교인들의 경축일인데 그 말의 근원은 고대 영어의 Christes Maesse, 즉 Christ's Mass에서 시작되었고,
오늘날과 같이 Christmas로 표기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16세기 부터라고 짐작하고 있다.

크리스마스는 부활절과 더불어 기독교의 두 큰 명절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부활절이라고 술 먹고 밤새도록 놀겠다고 하는 비기독교인들은 없으나 크리스마스만 되면 교회보다 술집에 더 많은 인파가 몰려든다.
교인들은 오히려 조용히 교회와 집에서 보내나, 비기독교인들은 밖에서 더 요란스럽게 파티를 열고 흥겹게 지낸다.

크리스마스 때 마다 사회가 너무 혼란하여 많은 사람들로 부터 교회가 지탄을 받게 되자 교회는 좋은 크리스마스의 전통행사 마져도 포기하면서 까지 조용히 지내려고 하고,
비기독교인들은 아직도 술집과 땐스홀, 또는 디스코텍에서 소란스럽게 보내는 축제일이 되고 말았다.
이는 12월 25일이 본래 기독교의 성탄절이기 훨신 이전에 이교도들이 자신들의 신을 경축하는 명절이었던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볼수 있다.

1. 크리시마스의 시작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로 처음 지키기 시작한 것은 4세기의 일이다.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지키기 전에는 1월 6일을 크리스마스로 지켰는데 동방교회에서는 1월 6일을 예수의 탄생과 세례를 기념하는 이중 명절로 지켰고,
예루살렘에서는 같은 날 예수의 탄생만 경축 하였다.

①로마 교회

로마에서는 4세기에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결정하고 이어서 1월 6일을 동방 박사가 아기 예수를 방문한 현현일 (Epiphany)로 기념하였다.
예수의 세례 기념일은 1월 6일로 부터 옥타브가 되는 다음주 같은날로 연기하여 지키는데 이날에는 예수가 세례를 받았다는 정도로 기억할 뿐 특별한 행사는 없다.

본래 로마에서는 하루 해가 가장 짧았다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12월 25일을 "태양의 탄생일"로 보고 이날을 축제일로 삼아 농업을 주관하는 Saturnalia 라고 불리는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것은 주후 274년 Aurelian 로마황제에 의하여 되어진 일이다.
북구라파에서는 이전부터 "태양이 다시소생"하는 동지 (冬至)를 크게 기념하는 축제(Festival)를 전통적으로 지켜 왔었다.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를 "세상의 빛"(요 1:9)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빛"의 탄생이다.
로마에서 이교도들이 12월 25일을 "태양의 탄생일"로 정한것과 기독교에서 "세상의 빛"이 탄생한 날을 12월 25일로 결정한 것은 이교도들의 "태양의 빛"과 기독교의 "세상의 빛"을 일치시킴으로 기독교를 이교도들에게 더욱 의미있게 설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기독교인들이 사용한 그 시대를 기록한 력기를 보면 주후 336년전에 이상과 같이 결정해서 지킨것을 알수 있고,
이날(12월 25일)을 교회력의 첫날로 기록하고 있는것을 볼수 있다.

② 에집트

에집트에는 희랍의 철학, 동양의 신비주의, 기독교의 교리등을 종합하여 얻은 "인간의 지식에 의하여 인간 영혼의 구원을 얻을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노시스(Gnostics)라고 하는 기독교의 이단 집단이 있었다.
약 200년경에 Clement (Clement of Alexandria)가 1월10일 (일부 사람들은 1월 6일 이라고도 함) 을 그리스도의 세례를 기념하는 날로 지켰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에집트에서 1월 6일을 교회의 축일로 정한 것은 그노시스 교도 보다 2세기 후인 380년에서 400년 사이에 결정된 일이다.
에집트에서는 이 날을 예수의 탄생일 겸 세례 기념일로 지켰다고 그 무렵 에집트를 방문한 John Cassian이 기록하고 있다.

③ 동방교회

동방교회에서 크리스마스를 특정일로 정해서 지키기 시작한 것은 380년 Constantinople에서 비롯 되었고, Antioch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계속 반대 해 왔었다.
동 로마제국에서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1월 6일을 현현일로 명확하게 분리하여 지키게 된것은 431년 에베소 공의회 (Council of Ephesus)에서 결정한 이후 432년 부터 이다.

④ 예루살렘과 아르메니아

예루살렘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계속 부정해 오다가 6세기 이후부터 1월 6일과 12월 25일로 분리하여 경축하기 시작하였다.
아직도 Armenia 지방의 교회에서는 1월 6일에 성탄절을 지키고 있다.
이와 같은 전통 때문에 1월 6일 현현일을 "작은 크리스마스"(Little Christmas) 또는 "구 크리스마스"(Old Christmas)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 개신교회에서도 현현일을 지킬수 있도록 장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동방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에 그리스도의 탄생과 함께 같은 날 천사들에 의하여 "기쁜소식"을 들은 목자들의 방문(눅 2:11)도 겸하여 경축하고 동시에 성경에는 동방박사가 언제 찾아 왔는지 확실한 날짜는 밝히지 않았지만 동방박사의 경배도 아울러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동방교회에서는 탄생과 목자만을 기억하고 동방박사의 경배는 현현일에 기념한다.

2. 크리스마스의 전통과 관습

크리스마스와 함께 오래도록 지켜 내려 오는 전통과 관습이 있다.
촛불예배라든가,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빨간 열매가 달린 초록색 담장(Holly)이라든가,
싼타클로스 할아버지, 마굿간 등이 그것이다.
이들 관습의 많은 부분이 비기독교적인 요소가 많다.
이것은 본래 12월 25일이 이교도의 축제일인데 이것을 기독교의 축일로 바꾸었기 때문에 이교도의 전통과 관습이 기독교의 관습에 그대로 남아 있는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① 크리스마스 장작

고대 Scandinavia에서는 동짓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큰 화로에 불을 붙이는 전통이 있었다.
이것은 동지까지 해가 짧아 지다가 이 날로 부터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여 "태양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였다.
태양이 없는 겨울울 지내는 북극지방의 사람들에게 태양이 다시 살아 난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 심장한 일이다.
이 전통이 영국에 와서는 큰 장작(크리스마스 장작 또는 Yule log)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벽난로(fire-place)에서 불을 붙여 밤새도록 태워 방도 따뜻하게하고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도 돋구는 풍습으로 전해져 왔다.

② 촛불예배

예수는 "세상의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요한복음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참 빛이시며... 그 빛이 어둠에 비치니 어둠이 이기지 못하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천주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전날밤에 자정 촛불미사를 드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의 빛"되신 예수가 이 세상에 빛으로 등장하시는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개신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 자정 촛불예배를 별로 지키지 않는다.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이외에 촛불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경우는 고난주간의 세족 목요일 저녁예배이다.

이 경우의 촛불예배는 크리스마스의 경우과는 정 반대이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가 죽으심으로 밝았던 세상이 다시 어두어지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칠언을 한마디씩 읽고 명상하든가 또는 합창단이 노래하고 나면 촛불을 하나식 꺼 나가는 것으로 명상이 계속되는 동안 촛불은 둘 셋 넷... 꺼져 종국에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왕촛대의 불만 남기고 어두운 가운데에서 예배를 마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개신교회 중에서 는 새문안 교회가 매년 크리스마스와 세족 목요일에 촛불예배를 드리고 있다.

③ 상록 담장 넝쿨

크리스마스가 되면 교회를 파란 담장 넝쿨로 장식하고, 또 그렇게 장식된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고 받는다.
이와같은 풍습은 북 유럽의 비기독교인들의 전통이 역시 영국에 전해진 것이다.
아리안 인종의 한 분파로 Ireland와 Wales 및 Scotland에 사는 겔트족과 독일족들은 동짓날 축제 때가 되면 상록 담장 넝쿨을 영원한 생명의 상징으로 숭배 했었다.
이 식물을 숭배하게 된 이유는 태양이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질때 쓰신 가시 면류관이 담장 넝쿨로 만들어졌다고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 담장 넝쿨은 본래 흰 열매를 맺는 식물이었는데 가시 면류관을 만들어 예수의 머리에 눌러 씌움으로 예수의 머리에서 피가 솟구쳐 나와 빨간 열매로 변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스마스 때 담장 넝쿨로 화환을 만들어 교회와 집문에 붙이는 관습이 바로 그리스도의 면류관의 상징이다.

④ 크리스마스 츄리 (Christmas tree)

크리스마스 츄리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중에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이 독일에서 Martin Luther가 처음으로 시작했다는 이야기이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하늘에 별이 빛나고 그 밑에 상록수가 서 있는 모습이 Luther의 마음속에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는 상록수의 끝이 뾰죽하여 마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 같이 보여 이와같은 나무를 준비하여 자기집 방에 세우고 거기에 별과 촛불을 매 달아서 장식을 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상록수는 이교도들에게 있어서는 "생명의 상징"이었다는 것이다.
이교도들의 "생명의 상징"인 상록수와 기독교인들의 생명의 상징인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하나로 통합되어 이루어진 전통이 "크리스마스 나무"라는 것이다.

⑤ 싼타클로스 할아버지

뚱뚱하고 배가 불룩할 뿐 아니라 기분좋게 "호! 호! 호!"하고 웃는 흰 수염이 있는 싼타클로스 할아버지는 4세기에 소아시아 지방의 주교로 있었던 좋은 일을 많이 행한 성 니콜라스 (St. Nicholas)를 의미한다고 한다.
선물을 나누어 주는 싼타클로스의 풍습은 성 니콜라스가 평상시 불쌍한 어린이들에게 많은 선물을 나누어 준 것을 기념하는 관습이다.

처음엔 소아시아에서 시작된 것이 구라파에 전해졌고, 그것이 화란 사람들에게 까지 전해졌는데 이들 중 많은 수가 미국으로 이민해 감으로써 미국에까지 전파되었다고 한다.
싼타클로스가 선물을 배달하면서 "호! 호! 호!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즐겁게 외치는데, 이것은 미국작가 Washington Irving이 싼타클로스를 항상 웃는 즐거운 인물로 묘사한 {VisitfromSt.Nicholas}를 1822년 Clement Moore가 작곡 함으로("T'was the Night before Christmas") 시작 되었다.
싼타클로스가 흰 털이 달린 빨간옷과 검은 벨트를 두르고 긴 고깔모자를 쓴 모습은 미국 만화가 Thomas Nast가 1863년에 그린 만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⑥ 크리스마스 선물교환

로마에서 쌔터날리아로 지키는 12월 17일 부터 24일 까지는 흥겹게 지내는 계절이었다.
이때는 집안을 상록수나 상록 담장넝쿨, 그리고 촛불로 장식을 하고 선물을 어린이들과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종들에게 주는 풍습이 있었다.
이와 같은 풍습이 크리스마스에 까지 영향을 미쳐 오늘날도 선물을 교환하고 있다.
또한 동방박사가 아기예수를 찾아와 황금, 유향, 몰약을 선물로 드린 것을 본받아 기독교인들 간에는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 풍습이 생겼을 것이다.

⑦ 마굿간의 설치

크리스마스 때 한국의 개신교회 중에서 마굿간을 만들어 전시하는 교회는 별로 없다.
그러나 명동 성당에 가면 마굿간이 해마다 설치됨을 본다.
거기에는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고, 옆에는 요셉이 서 있고, 양과 짐승들도 있고, 동방박사 세 사람이 엄숙하게 경배를 드리고 있다.
교인들은 그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고 간다.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철이 되면 여기저기서 마굿간을 구경할 수 있다.
이와같은 마굿간은 13세기 아씨씨의 성 프랜시스 (St. Francis of Assisi)가 처음 시작하였다고 한다.
성 프랜시스는 탄생하신 아기 예수를 경축하기 위하여 그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것도 권장하였다.
여기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이 시작 되었다.

⑧ 기 타

이 외에도 우리 나라에서는 볼수 없는 것으로 "Lord of Misrule"이란 것이 중세 크리스마스 때 행해 졌었는데 이것은 평민 또는 대 군주의 노예 중에서 한 사람을 뽑아 그가 군왕이 되어 크리스마스 축제 기간 동안 절대 권력을 가지고 천하를 다스리게 하는 전통이다.
이들은 대부분 사회의 대혼란을 일으키곤 했는데 이 전통도 쌔터넬리아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쌔터넬리아 축제기간에는 모든 노예에게 그들의 주인과 평등한 권리를 부여하였었다.

3. 크리스마스 캐롤 (Christmas Carol)

① 캐롤의 시작

크리스마스의 전통과 관습 중에서 가장 즐겁고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캐롤를 부르는 것일 것이다.
캐롤은 본래 불란서 말 carole에서 온 말로 주로 중세 불란서에서 둥근 원을 만들어 춤을 추었던 원무(圓舞)를 일컫던 말이었다.
이 원무는 동지때 가졌던 축제에서 사용한 이교도들의 무곡이었다고도 한다.
그러므로 캐롤은 춤출 때 부르는 노래를 일컫는 말이어서 캐롤이 모두 크리스마스와 반드시 관계를 갖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또한 그 음악이 캐롤인지 아닌지는 곡의 가사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음악적 형식으로 판단하였다.
그 곡에 버든(Burden)이라고 불리우는 후렴이 각 절의 가사 끝에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 했는데 이것을 형식으로 보면 B, V1,B, V2, ... B의 형식이다.
이와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을 개롤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캐롤은 우리가 현재 아는 바 대로 크리스마스 노래만을 한정해서 일컫는 말은 아니다.
그 시대의 캐롤은 다양하게 씌여져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캐롤이 동정녀 마리아, 아기 예수, 등 을 주제로 한 연유로 크리스마스 노래인 것 같으나 실상은 부활절 캐롤도 있고, 고난절, 승천일, 성령강림 주일,...등등 1년 교회력의 모든 절기에 맞는 캐롤이 있다.

옥스포드 대학 에서 출판한 {TheOxfordBookofCarols} 에 보면 모든 절기에 맞는 캐롤 200여곡이 실려 있다.
대부분의 캐롤이 라틴어와 영어 두 언어를 섞어 쓰고 있는 것이 캐롤의 또 다른 특색이다.
"저들 밖에 ... 노엘, 노엘," "천사 찬송하기를... 글로리아(영광)," 등은 좋은 예이다.
15세기에 있어서 캐롤은 대중적인 종교 가곡이었고, 불란서의 론도 (rondeau), 비렐레이 (virelai), 발라드 (ballade)와 견줄 수 있는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고정된 음악 형식 이었다.
캐롤음악의 중요성은 그 음악의 화성에 있지 않고 선율과 리듬에 있다.
일반적으로 캐롤은 즐거운 노래로 된 것이 특징이고 대중에게 많이 불려지도록 되어 있다.
캐롤은 본래 교회의 절기 때 마다 부르는 모든 노래를 일컬었지만, 특별히 크리스마스 노래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크리스마스 캐롤을 독일에서는 바이나흐트 리트(Weihnacht lied) 라고 하는데, 이는 영어로 Christmas eve song이란 뜻이고, 불란서에서는 노엘(Noêl)이라고 한다.
노엘이란 말은 영국으로 건너와서 노웰(Nowell)이라 불려 졌다.

② 캐롤의 내용

성 프랜시스(St. Francis: 1181-1226)가 처음 시작 했다고 하는 마굿간 앞에서 사람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행사를 가졌다.
여기에서 부른 노래와 춤이 캐롤이고 원무였다.
고대 캐롤이 수록된 한 雜記帳이 1850년 발견 되었는데 그 잡기장은 Richard Hill이란 영국의 한 식료품 가게 주인이 1500년부터 1536년 사이 자기가 기억해야 할 모든 것을 기록해 둔 것이었다.
무게 환산표, 장날, 약처방, 음식 조리법, 자기 아이들의 생일, 맥주 만드는 법 등과 수수께끼, 글 맞추기, 영어, 불어, 래틴어 詩 등을 기록해 놓고, 여기에 그 시대의 많은 캐롤을 수록해 두었다.
그외에도 조잡하게 인쇄된 낱장으로 된 캐롤이 남아 있는 것이 있고, 구전되어 내려오는 캐롤, 민속음악 수집가들에 의하여 수록 편집된 캐롤 등에서 옛 캐롤을 찾아 볼 수가 있다.
그리스도의 탄생이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과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특별히 불란서 캐롤은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요소가 많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태리의 나폴리 같은 지방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언덕 위 목장에서 목동들이 내려와 마굿간이 설치되어 있는 앞에서 춤을 추며 캐롤을 부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Handel이 작곡한 [메시야]중에 전원 교향곡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크리스마스와 함께 빼 놓을 수 없는 들의 목자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 시대 목자들이 백파이프 (bagpipe)로 연주하는 음악을 그대로 전원 교향곡으로 만든 것이어서 밑의 저음은 같은 음이 계속되는 통주음(通奏音)에다 그 위에 고음이 화려하고 맑고 조용히 움직 이는 선율로 되어 있어 조용하고 평화로운 베들레헴의 들과 잠자는 양떼들, 차거운 밤하늘과 별빛 을 잘 묘사했다고 보여진다.
이 음악이 끝나면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 "주께 영광" (Glory to God)을 노래 하는 순서가 이어 진다.
캐롤 중에는 천사들의 노래가 많이 있는데 이것은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역사상의 첫 캐롤을, 천사들이 하늘에서 불렀기 때문이다.
천사들의 찬양이 주제로 된 것 중 우리가 쉽게 아는 것은 "천사 찬송 하기를..." "하늘 위의 천사들... 영광..." 등등이 있고, "Ding, dong, Meririly on High.... Gloria in excelsis Deo" 등을 들 수 있다.
목자들이 들에서 양을 치는데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 하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라고 찬양한 것을 그들이 처음으로 들었으나 그 음악, 그 멜로디와 리듬과 화음이 어떠 했는지는 애석하게도 우리가 알 길이 없다.
그 때 천사들의 합창이 어떤 것이었는지 실로 궁금하기 그지없다.
많은 작곡가들이 그 천사들의 찬송을 캐롤로 작곡해 놓았는데 과연 어느만치 그때의 천사 노래에 흡사한지는 모르겠다.
그 외의 많은 캐롤이 성경말씀 이외의 내용으로 된 것이 많다.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재미있고 진귀한 아이디어를 내용으로 한 것이 대단히 많은데 이런 것들은 본래 캐롤이 춤을 추기 위한 노래이고, 즐겁고 흥겹고 경쾌한 기분을 노래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교회 예배에서 부를 수는 없는 곡들이다.

"Jingle Bells", "싼타클로스가 마을에 오네"(Santa Claus is Coming toTwon), "빨간코 루돌프"(Rudolf the Red-nosed Reindeer), "White Christmas", "I Wish You a Merry Christmas,"... 등등은 예배에서 부를 수 없는 즐거운 캐롤이다.
특별히 "The Holly and the Ivy"는 기독교적인 내용과 이교도적인 내용이 혼합되어 캐롤이 된 좋은 예이다.

③ 캐롤링 (Carolling)

19세기 상반기 영국에서는 집집을 방문 하면서 캐롤을 불러주는 관습이 있었다.
부락의 모든 아이들은 크리스마스에 쓸 자금을 모으기 위하여 11월 말 부터 시작하여 각집을 돌아 다니면서 캐롤을 부르곤 했던 것이다.
미국 작가Washington Irving(1783-1859)이 1820년 영국을 방문했을 때, 크리스마스날 밤 창문 밑에서 들려오는 합창단의 아름다운 캐롤 소리에 잠이 깨었다고 한다.
그 합창단은 십여 명의 옆 동네 사람들로 구성되어 집집마다 돌아 다니면서 창문 밑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 화음이 서투르긴 해도 아름다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캐롤링은 그리스도 탄생의 기쁜소식을 천사들이 찬양으로 전했던 것처럼 크리스마스 새벽이면 구주 탄생의 기쁜 소식을 집집마다 전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졌다.
한국에서도 6.25후 얼마 동안 까지 크리스마스 새벽이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이 캐롤링의 전통을 유지 했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밤이 너무 무질서하고 퇴폐적인데다가 새벽의 노랫소리가 옆집의 비기독교인 가정에 안면 방해가되어 기쁜 소식이 아니라 불쾌한 원성이 높다고하여 교회가 자진하여 캐롤링을 삼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④ 크리스마스 캐롤 이외의 캐롤

캐롤은 크리스마스 캐롤만 있는것이 아니라고 이미 말 했다.
{The Oxford Book of Carols}를 보면 1년 열두달 교회력에 따라 200여개의 무수히 많은 캐롤이 수록된 것을 볼 수 있다.
캐롤은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야외에서도, 무도회에서도, 음악회에서도, 그리고 집에서도 광범위하게 불려질 수 있는 음악이다.
우리가 캐롤을 크리스마스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많은 캐롤이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하여 씌어 졌기 때문이다.
마치 요즘 대학생들이 기타에 맞추어 가스펠 송 (실제로는 포크송(folk song)이라고 해야 옳다)을 즐겨 부르듯이恪캐롤을 계절과 교회력에 맞추어 교회의 모임과, 그룹 활동, 여전도회, 청년회 등의 모임과 예배에 두루 사용 한다고 하면 즐거운 기분을 북돋우어주고 육체의 흥을 만끽하도록 되어있다.
기존교회에서는 신앙 생활에서 육체의 즐거움을 증가시켜 주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부활절, 추수 감사절 등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모이는 중요한 이유는 이 절기의 찬송가와 찬양대의 음악이 모두 즐겁고 흥겹기 때문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⑤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않는 교회

크리스마스가 항상 즐겁고 기쁜 명절이었던 것 만은 아니었다.
마치 오늘날의 크리스마스가 유흥과 향락과 타락 방종의 크리스마스여서 많은 사람들의 지탄을 받고 있는 것처럼, 과거 역사에서도 크리스마스를 금지하고 지키지 않은 적이 있었다.
칼빈주의자인 청교도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Armenia 교회에서는 아직도 크리스마스를 경축하지 않는 것과 같이 우리나라에서도 "형제교회"에서는 지금도 철저히 칼빈주의와 청교도의 주장대로 크리스마스를 경축하지 않고 지낸다.

청교도들은 수세기 동안 춤과 연극을 거부해 왔고, 함께 노래 부르는 것도 못하게 했으며, 교인들이 교회에서 축제의 분위기를 갖는 것을 적극 반대해 왔었다.
영국에서 청교도들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자, Oliver Cromwell은 1642년 크리스마스를 비종교적인 행사라고 해서 축하 행사를 금지 시키고, 크리스마스를 지키든가 크리스마스날 일하지 않고 집에서 쉬는 사람들에게는 벌금형을 내렸다.
이 때 영국의 국회 (The Long Parliament, 1640-60)에서는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금식을 하도록 결정 했는데, 마침 1677년의 크리스마스가 그해 12월의 마지막 수요일에 걸려 모든 청교도들은 금식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리고 1647년에는 크리스마스 뿐 아니라 모든 축제일을 국법으로 없애 버렸다.
1656년Hezekiah Woodward의 기록에 보면 크리스마스는 "이방인들의 신인 농업신을 경배하는 이방인들의 축제날이요, 불경스러운 사람들이 고함지르는 날이요, 미신을 믿는 사람의 길일(吉日) 이요, 많은 잡귀들의 날이요, 악마의 귀신이 활동하는 날이며, 진정한 기독교인은 금식을 시도하는 날이다"라고 되어 있다.
청교도들이 미국에 건너온 것이 1620년이었는데 그후 2백여년간 이들은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않았다.
그러나 구라파 각국에서 이민이 계속 쏟아져 밀려 들어오고, 이들이 본국에서 지켜오던 크리스마스를 그대로 지키게 됨으로 인해 종래에는 미국도 1856년에 이르러 크리스마스를 법적 인 공휴일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⑥ 캐롤 복원 운동

17세기에 영국과 Scotland의 청교도들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종교적인 축제를 지키는 것을 부정했을 뿐만 아니라, 크리스마스 캐롤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크리스마스 축하 행사를 금지 시켰었다.
그러나 청교도들의 세력이 약해 지면서 1660년부터 영국에서 크리스마스 축제 복원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Scotland의 장로교회에서는 계속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않았고 그대신 정월 초하루를 크리스마스 못지않게 즐겁고 흥겨운 명절로 지냈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도 많은 교회에서 신년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Scotland 교회의 영향이라고 본다.
이와 같은 청교도들의 극심한 캐롤에 대한 핍박으로 캐롤의 본래의 의미가 희석 되기에 이르렀다가 1831년 J.W.Parker에 의해 [크리스마스 캐롤집] (Christmas Carols)이 출판되었고, 그 음악적인 수준이 미흡했음에도 불구하고 1857년에 재판되었다.
이곳에 수록된 캐롤이 훌륭한 캐롤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이때 영국 감리교회의 Charles Wesley를 중심으로 캐롤 부흥운동이 시작되어 많은 캐롤이 새로운 양식으로 만들어 졌다.
예를 들면 "천사 찬송하기를..." 또는 "첫번 노엘" 등 찬송 스타일의 캐롤이 등장한 것이다.
미국 대륙에 건너간 청교도들도 처음에는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않았고, 따라서 캐롤도 가지고 가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에서 캐롤을 부르는 것은 지극히 근대의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목사 J.H. Hopkins가 "동방박사 세 사람..."을 쓰게 된 것이 1857년 경이고, Boston의 Trinity 교회의 목사였던 Philip Brooks가 "오, 베들레헴 작은 골..."을 쓴 것이 1868년의 일로 이때 부터 신대륙에도 옛 캐롤의 전통이 복원되어 전파되어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출처 : 하나님(Logos)의 존재와 속성을 아십니까
글쓴이 : 찬바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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