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이란 무엇인가?
기독교 영성은 무엇인가?
영성의 정의는 다양해서 말하는 사람의 수만큼 많다.
마치 유대인의 격언과도 같다.
“유대인 둘이 모이면 의견이 셋 나온다.”
영성에 관한 좋은 정의들이 있다.
“영성은 기도와 삶의 조화다”(웨인라이트),
“영성은 초월적 실재와의 만남이다”(홈즈),
“영성은 예수 안에서 경험하는 삶의 총체적 변화다”(샤우척),
“영성은 진정한 인간이 되는 길이다”(매쿼리),
“영성은 은혜 안에서 참 자아 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머튼).
그러나 어떤 정의를 택하더라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영성은 반드시 예수님의 생명과 관련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생명과 무관한 영성은 영성이더라도 허접하다.
교회 안에는 많은 프로그램이 있고 성장을 위한 많은 기술이 있지만 프로그램과 기술이 교회를 살리는 것이 아니다.
성장은 생명에서 오고 생명은 예수님에게서 나온다.
어떤 분이 말했다.
“우유공장에서 우유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젖소에서 우유가 나온다.”
그렇다. 프로그램과 기술은 우유를 가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우유 자체를 생산할 수는 없다.
생명은 예수님에게서 나오며 영성은 곧 예수님 자신의 생명이다.
예수님의 생명은 또한 체험된다.
영성은 예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는 것이다.
영성은 십자가를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토마스 머튼이 말한 대로, 성도는 선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험하며 사는 사람이다.
신학은 ‘하나님에 대하여(about God)’ 말하지만, 영성은 ‘하나님과 함께(with God)’ 사는 것이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신뢰와 매력을 잃은 이유는 교회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교회가 종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생명은 사라지고 종교만 남은 껍데기 기독교에서 진정한 안식을 얻을 사람은 없다.
교회의 전통적 영성에서 만족을 얻지 못한 현대인은 동양종교나 심리학에서 그 대안을 찾지만 동양종교나 심리학은 현대인에게 어떤 신앙고백이나 제자도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마음을 비워 청정한 마음으로 돌아가게 할 뿐이다.
새로운 영성을 찾는 사람들이 교회 안팎에서 늘어나는 이유는 교회가 예수님의 생명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교회는 교회 안의 불만족 고객에게 다른 메뉴를 내놓을 생각을 그쳐야 한다.
이미 교회를 떠난 영혼들에게 우리에게는 아직도 새롭고 자극적인 무엇이 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유일한 해결책은 예수님의 생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영성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껍데기가 싫어 교회를 떠난 사람도 아직은 알맹이에 대한 목마름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목회자의 영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목회자는 종종 교회를 개혁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진정으로 개혁시킬 대상은 목회자 자신이다.
왜 그렇게 감투를 좋아하는가? 언제부터 목회자가 교회의 CEO인가?
이 땅의 목회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애쓰고 수고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본회퍼의 말대로 목회자는 교회 문제의 책임을 교인에게 돌릴 권리는 없다.
그는 여전히 “모든 문제는 내 책임입니다”라고 말할 의무만 있다.
이제라도 돌아가야 한다.
언제나 돌아가야 할 우리의 고향, ‘예수님의 생명’이 있는 한 우리에게는 아직도 희망이 있다.
이윤재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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