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왜’ 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삶(눅12:11-21)

김믿소사 2007. 6. 7. 20:56

‘왜’ 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삶

(눅12:11-21)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인생이 허무하고 허전하고 외롭고 고독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만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은 때때로 인생이 허무하고 허전하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한참 잘 나가던 젊은 때와 달리 주목을 받지 못하고 주위에 들끓던 많은 사람이 다 떠나고 홀로 남겨진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외로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지만 나이가 들어 어디에도 쓸모없는 하찮은 존재가 되어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외로운 것입니다. 외로움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연세가 드신 분들은 평생 동안 이것저것 많은 일들을 하신 분들입니다. 자신이 한 일을 생각하면, 자신이 그동안 이루어놓은 업적을 생각하면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흐뭇하고 가슴이 뿌듯하고 넉넉해야 할 텐데 행복이 넘쳐야 할 텐데 그와는 반대로 외롭고 쓸쓸한 것입니다. 그리 분주하고 바쁘게 살아왔으면서도, 수많은 일을 했으면서도 그 모든 것들이 가슴에 차지 않고 가슴이 텅 빈 것과 같은 허전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인생의 말년에 허전함을 느꼈던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 전도서를 쓴 솔로몬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성경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전도서는 솔로몬의 인생의 말년에 쓰인 자서전적 책이라고 말합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자서전적인 책인 전도서에 기록하기를 자신의 대단한 인생, 위대한 업적이 다 허무한 것이었고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전도서 2장 4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나를 위하여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을 주기 위하여 못들을 팠으며 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은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니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도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로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솔로몬은 평생을 통해 이루었던 업적이 그 호사스러운 삶이 그 수많은 보화가 말년에 생각해보니 그것이 다 헛된 것이었다는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솔로몬은 왜 그가 평생을 이룬 것이 헛된 것이라고 나는 인생을 잘못 산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린 것일까요? 왜 그 모든 것을 이룬 대단한 인생을 살았으면서도 자신의 인생을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평가를 내린 것일까요? 그런데 성경에는 솔로몬과 정반대로 인생의 말년에 나는 인생을 성공한 사람이다, 나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지금 기쁘고 행복하다고 자신의 인생을 평가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도 바울입니다. 디모데 후서 4장 6절 이후는 사도 바울이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고백한 말입니다.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배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사도 바울은 인생을 잘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큰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노년을 평안하게 지내려면 젊어서 인생을 잘 살아야 합니다. 젊은 시절을 잘 못 산 사람은 그 말년이 좋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마지막의 삶을 기쁘게 살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합니다. 본문 말씀에 따르면 솔로몬은 노후가 불행한 사람입니다. 젊어서 인생을 잘못 산 사람입니다. 반면 사도 바울은 젊어서 인생을 잘 살았기 때문에 그의 노년이 행복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솔로몬과 바울은 어떻게 살았기에 솔로몬은 자신의 삶을 잘못된 삶이었다고 고백하고 바울은 자신의 삶을 성공한 삶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일까요? 그러나 두 사람의 삶을 세상적으로 생각하면 솔로몬의 삶은 바울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인생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우리가 살고 싶어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최고의 사치를 누리고 살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가졌으며 수많은 신하와 넓은 영토 그가 갖고 싶은 모든 보화를 다 가졌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살았습니다. 날마다 노래하고 춤추며 아름다운 여인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반면 사도 바울은 솔로몬이 궁중에서 호사스러운 삶을 살 때 집도 없이 유리방황하며 떠돌았습니다. 솔로몬이 들에 핀 백합화에 비교할 수 없는 호사스러운 옷을 입고 사는 것과 반대로 사도 바울은 옷 한 벌 없이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난의 삶을 살았습니다.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고난을 당하고 배척을 당했습니다. 솔로몬은 수백 명의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지냈지만 사도 바울은 가족도 없이 홀로 외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세상적 기준으로 보면 솔로몬은 후회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만족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인생을 살았으니 노년에 만족하고 뿌듯해야 합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 모든 것이 다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은 헛된 것과 같았다고 후회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핍박받고 매를 맞고 가족도 없이 감옥에 갇히고 제명에 죽지도 못했습니다. 솔로몬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삶이었습니다. 평범한 우리보다 더 힘든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만족한 삶을 살았다, 훌륭한 상을 받을 만큼 훌륭한 인생을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많은 일을 한 사람이 쓴 회고록을 읽었습니다. 그 회고록의 마지막에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을 하고 살았느냐고 하면 할 말이 참으로 많지만 왜 살았느냐고 물으면 대답할 것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았기 때문에 참으로 할 말이 많지만 ‘왜’ 인생을 살았느냐 하면 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평가는 무엇을 했느냐, 무엇을 이루었느냐, 무엇을 얼마만큼 가졌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 때문에 왜 살았느냐 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사업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사업을 하느냐 가 중요하며, 얼마나 돈을 가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그 돈을 가졌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건강한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강이 왜 필요한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을 얼마나 이루고 얼마나 가지고 사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국 솔로몬은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그의 인생에 왜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인생은 헛된 인생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한 목적이 없이 하는 일은 당장은 대단한 일처럼 엄청난 일처럼 생각되지만 끝에 가면 아무 것도 아닌 바람을 잡는 것과도 같다고 스스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 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사람은 실패한 삶을 산 사람입니다. 목적 없이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그 마지막에는 휴지조각에 불과한 것입니다. 실제로 솔로몬이 많은 것을 가졌지만 지금 솔로몬이 가졌던 것은 흔적도 없습니다. 정말로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이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반면 사도 바울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아무것도 이룬 것도 없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분명한 목적을 가진 삶이었기 때문에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많은 엄청난 것들로 남아있는 것을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의 인생의 목적은 죽으나 사나 예수그리스도였습니다. 당시에는 별것 아닌 조그마한 일이였지만 그것이 인생에 쌓여져 풍성한 열매로 채워져 그의 인생만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를 채우는 엄청난 일을 이루었습니다. 이것이 솔로몬과 바울의 인생의 차이입니다.

허무한 인생이냐 상급이 있는 의미 있는 인생이냐는 무엇을 얼마만큼 소유하느냐 얼마만큼 이루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왜’ 라는 질문을 가지고 목적 있는 삶을 살아가느냐 아닌가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인생에서 무엇을 얼마만큼 가지느냐, 얼마만큼 이루느냐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목적 없이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이루는 것은 바람을 잡는 것과 같아서 언젠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이루어보려고 발버둥치지만 그것은 그 옛날 솔로몬이 이룬 것과 같아서 시간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없어질 것입니다. 목적이 무엇이냐,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가, 왜 건강하고 사업이 잘되고 돈이 필요한지 분명하게 대답해야 합니다. 그런 삶이 의미 있는 삶이며 그런 삶을 살 때 우리 인생이 행복의 열매가 맺혀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무엇을 할까 무엇을 가질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저 사람이 저 일을 하는 것은 저 목적 때문이라는 것을 자신도 알고 사람들도 알고 하나님도 알아야 합니다. 솔로몬의 삶과 바울의 삶을 볼 때 여러분의 삶은 어떤 삶입니까? 솔로몬처럼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가져보려고 살아간다면 인생의 말년에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갈 때 그것이 비록 조그맣고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그것이 여러분의 인생에 큰 열매로 여러분을 행복과 기쁨으로 인도하는 축복의 삶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사느냐하는 것이 여러분의 인생의 성공이냐 실패냐를 결정하는 평가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이 귀한 깨달음이 오늘 이 아침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낙송의 집
글쓴이 : 낙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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