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중동 역사상 제일 잘 기억되는 사건은 노아 홍수이다.
수메르(Sumer)인들이 홍수를 인간 역사상 제일 큰 재난으로 기억하여 구두로 이 사실을 전해 오던 중 설형 문자 토판에 기록하여 이 사실이 후세대에 전해졌다.
수메르 왕 족보(The Sumerian King List)는 홍수 전, 여덟 명의 왕의 행사를 기록한 후 그 후대의 기록을 중단하고 홍수 사건을 서술하고 있다.
이 수메르 왕 족보는 1923년에 랑돈(S. Langdon)이 옥스포드 설형 문자 원문(The Oxford Edition of cuneiform Text, Vol. Ⅱ, No, 1923, 444, pp.13-; plates Ⅰ-Ⅳ)과 야콥센(Thorkild Jacobsen) 이 1939년에 발표했다(The sumerian King List, Assyriological Studies, Ⅺ, Chicago, 1939).
이 족보에는 여덟 왕이 홍수전에 메소포타미아 도시들을 241,200년간, 매우 긴 시대를 통치했다고 믿기 어려운 연수를 기록했다.
한 왕의 제일 짧은 통치 기간은 23,200년간이다.
기원전 3세기에 바벨론 제사장 베로수스(Berossus)는 열(10) 왕의 이름을 말하고 있다.
창세기 5장에도 아담부터 노아까지 열 조상을 말하고 있다.
수메르 왕 족보는 증거 하기를 홍수가 땅 전면을 휩쓸었고, 그 후 다시 하늘에서부터 키쉬(Kish)에 처음으로 왕권을 세웠다고 보도한다.
홍수 이야기로서, 고대 중동에서는 홍수 설화에 대한 몇 가지 수정본(modified forms)이 전달되어 왔다.
“수메르 홍수 설화”는 닙푸르(Nippur)에서 토판을 발굴하였는데 기원전 2000년경에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면과 뒷면에 기록이 있는 토판으로서,
첫 단에는 인간과 동물 창조를 설명하고,
둘째 단에는 어떻게 신들이 다섯 도시를 세웠는지를 말하고 있다.
이 다섯 도시에는 에리두(Eridu), 시푸르(Sippur)와 슈루팍(Shuruppak)이 포함되고, 각 도시에 도시 신을 배당하고, 물 댐을 건설한 것을 말한다.
셋째 단에서 홍수 이야기가 시작되고, 여신 이스타르(Ishtar=Ninhursag)가 인간을 위해 홍수가 발생하는 것을 매우 슬퍼하고 있다.
그때에 지우수드라(Ziusudra=Ziusudda)가 왕-제사장이었고, 이 왕이 홍수가 오는 소식을 듣자 나무로 만든 우상을 매일 숭배하게 된다.
넷째 단에는 지우수드라왕이 자기 도시 성 옆에서 자기가 숭배하던 신으로부터 홍수에 관한 소식을 받은 것을 기록했다.
다섯째 단은 홍수가 시작된 것과 지우수드라왕이 큰 배를 타고 있는 것을 기록한다.
여섯째 단은 지우수드라왕이 신으로부터 불사(不死)하는 은사를 받아 “딜문산(Mt. Dilmun)” 곧 낙원과 같은 곳에 들어가 영생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바벨론 홍수 설화”는 먼저 생긴 수메르 홍수 설화에 근거한 것이지만 홍수를 더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바벨론 홍수 설화는 길가메쉬 서사시의 11장이다.
위에 이미 말한 대로 길가메쉬 서사시는 앗수르 왕 아술바니팔(Ashurbanipal, 669 -626 B.C.)이 지은 니느웨 도서관을 발굴함으로 다른 많은 토판 문서들과 함께 발견이 되었다.
니느웨에서 라삼(Hormuzd Rassam)이 1853년에 와서 처음으로 스미스(George smith)가 이 문서를 인정하게 되었다.
바벨론 홍수 설화는 창세기 홍수 기록과 비슷한 점이 나타나고 있다.
수메르 홍수 설화에 있어 노아 격인 지우수드라는 바벨론 홍수에는 우트나피슈팀(Utnapishtim, "생명의 날")으로 나타나 있다.
길가메쉬 서사시의 영웅 길가메쉬는 불사를 찾던 중 불사를 가진 자기 친척 우트나피슈팀이 자기가 불사하게 된 것은 신이 준 선물로 홍수 후 배에서 나오자 받은 것이라고 했다.
신들이 홍수를 지상에 보내기로 작성한 후 우트나피슈팀에게 에아(Ea)신을 통해서 경고해 주었다.
신들이 준 지시를 따라서 우트나피슈팀이 전면으로 120규빗이 되는 6층의 배를 건설했다.
이것은 바깥에 일곱 간, 안쪽 면에 아홉 간으로 구별되었다.
양식과 제물을 위하여 기름을 배 안에 가져가고, 금, 은, 자기 가족, 동물과 기술자들을 배 안으로 들여보냈다.
곧 홍수가 시작되었다.
우트나피슈팀이 맨 마지막 배안에서 밖으로 사방을 살펴보아 땅이 나타날 것을 고대하고 있었다.
마침내 우트나피슈팀은 배가 땅에 주저앉게 된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지점이 곧 니시르산(Mt. Nisir)이었다.
니시르산에 자기 배를 굳게 안정시키고는 우트나피슈팀은 비둘기를 일곱째 날에 밖으로 보냈고 그 후 제비와 까마귀도 밖으로 보냈다.
그 후 자기가 숭배한 신들에게 제물을 드렸다.
신들은 매우 수치스러운 기갈에 든 것 같은 형편에서 재물을 받아 기갈을 만족시켰다.
그리고 누가 홍수 책임을 질 것인가에 대해서 의문이 생겨 신들은 말다툼을 한다.
여신 이스타르가 엔릴(Enlil)신에게 책임을 지웠다.
엔릴이 우트나피슈팀과 부인을 배에서부터 인도해 그들에게 불사(不死)를 제공했다.
이와 같이 바벨론 홍수 설화에는 창세기 홍수 기사와 좀 비슷한 점이 나타나 있다.
홍수를 신의 결정이라고 본다.
그러나 홍수를 신의 계획과 결정이라고 보지만, 바벨론 홍수 설화는 다신을 말하고 있다.
즉, 아누(Anu), 니눌타(Ninurta), 엔누기(Ennugi)와 에아(Ea)신들이 관계되고 있다.
창세기 홍수는 하나님의 계획과 결정이라고 하되 유일신론을 말한다.
홍수가 올 것을 영웅에게 계시한 점에도 두 기록이 동일하다.
바벨론 홍수 설화에는 에아(Ea) 지능신이 우트나피슈팀에게 꿈속에서 홍수가 올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꿈 중에 계시하기를 홍수가 올 것이니 자기 집을 허물어 그 재료를 가지고 배를 만들 것을 명령했다.
창세기에도 노아가 홍수 계시를 받았다.
그러나 계시의 방식은 바벨론 홍수 설화와는 전혀 다르다.
창세기엔 말하기를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며”(6:9)라고 했고, 노아는 하나님 앞에서 큰 은혜를 받았다고 했다(6:8).
이와 같이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에서 노아는 꿈과 같은 아무런 중간 통로를 거치지 않고, 직접 교통하여 홍수가 올 것을 계시 받은 것이다.
직접 계시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건축하도록 지시하셨다(6:13-14)
두 기사는 홍수가 오게 된 것을 인간의 부패와 관련시키고 있다.
그러나 바벨론홍수 설화에는 인간이 범한 죄와 도덕적 타락을 홍수의 원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창세기 홍수는 궁극적으로 인간이 죄악으로 타락한 것이 홍수의 원인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둘 다 홍수에서 구원된 것을 말한다.
바벨론 홍수 설화는 우트나피슈팀과 그의 부인이 불사하는 선물을 받았다고 하지만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는 노아가 홍수에서 구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큰 축복을 받은 사실을 말한다.
바벨론 홍수 설화에는 배를 엘리푸(elippu=boat)라 하고, 수메르 홍수 설화에는 마구르구르(Magurgur, 거대한 배)라고 했고, 창세기 홍수는 테바, 즉 “방주”(6:14;7:1)라고 했는데 이것은 바벨론 이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단어이다.
바벨론 홍수 설화는 비와 폭풍이 여섯 주야 동안 계속되었고 일곱째 날에 그쳤다고 했지만 창세기 홍수 기사는 총 379일간(40주야 비가 쏟아짐을 비롯하여 방주에서 나오기까지) 비와 폭풍이 있었던 것을 말하고 있다.
바벨론 홍수 설화에는 배가 니시르산, 즉 티그리스강 동쪽과 잡(Zab)강 남쪽, 페르시아 해안에서 약 400마일 떨어진 곳을 지적하는 반면, 창세기에는 아라랏(Ararat)산을 말하며, 이 산은 아르메니아(Armenia), 카스피아해 서쪽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왕하 19:37에 보면, 아라랏은 지방 이름이며, 렘 51:27에는 아르메니아에 왕국 민니(Minni)와 함께 아라랏이 언급되어 있다.
아라랏은 산들의 집합을 의미하며, 아락세스(Araxes) 광야에 높이 솟아난 산들이다.
제일 높은 산은 5,185m나 된다.
아르메니아는 낙원, 에덴동산에 흐르는 강들의 원천이었고, 아라랏산이 이곳을 중심으로 뻗어 있다.
이곳이 세상에서 제일 적당한 위치이고, 이곳을 중심으로 홍수 후 노아 족속이 사방으로 퍼지게 된 것이다.
노아 자손이 지상에 퍼진 사실을 말하기 전에 홍수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간단히 취급하려고 한다.
한 가지 질문은 “노아 홍수가 우주적인 것인가?”
즉, “홍수가 지구 땅 전체를 뒤덮은 우주적 홍수인가?” 하는 것이다.
창 7:19에 보면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라고 한다.
그리고 7:20에 보면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고 했다.
이리하여 노아 방주는 아라랏산 위로 십오 규빗이나 높이 떠 있게 되었다.
이 사실에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노아 홍수시에 아라랏산이 제일 높은 산이었다는 것이다.(창8:4).
지금 우리가 아는 것은 아라랏산이 단지 5,185M 높이고, 히말리야산 중 제일 높은 봉우리는 8,182m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에 따르면 히말라야산 봉우리가 노아 홍수로 잠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창세기7:19을 해석하기를 다만 수사적인 표현으로 보고, 전 세계적 노아 홍수를 부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창세기 7:19-20의 노아 홍수를 전 세계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노아홍수는 단지 부분적인 홍수가 아니다.
비록 히말라야산 꼭대기가 아라랏산 꼭대기보다 높아서 물에 잠기지 아니했을 지라도 노아 홍수는 전 세계적인 홍수였다고 본다.
왜냐하면 비록 몇 개 높은 산꼭대기가 물에 잠기지 않았을지라도 그것은 단지 예외인 것이고, 이 사실을 성경에 기록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히말라야산 꼭대기 같은 데는 인간이 존재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므로 홍수가 거기까지 미치지 않았을지라도 아무 상관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라랏산 꼭대기에서 십오 규빗이나 더 높이 채울 만한 엄청난 홍수가 국지적으로 제한되었다고 할 수 없다.
40주야로 하늘에서 비가 퍼붓고 또한 땅에서도 샘물이 치솟았으니 (창7:11) 결단코 국지적 홍수가 그렇게 계속했으면 지방적 홍수로 머물러 있을 수 없고, 온 지상이 노아 홍수에 잠길 수밖에 없다.
사실상 홍수는 40일 동안 계속 높아지고, 150일 만에 최고 높이에 달했다.
노아 홍수가 논의의 여지없이 전 세계적인 홍수였다는 것은 이 히말라야산 중의 화석이 잘 증거하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이 노아 홍수가 전 세계적이었다는 사실을 여러 나라들의 홍수 설화가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홍수전의 산들이 오늘 우리가 보는 산들의 높이와 같았다고 보지 않는다.
홍수전에는 온 지구 위에 봄철 같은 기후가 계속되었고 사막과 북쪽 지방이 전연 없었던 사실을 통해 볼 때 오늘 우리가 보는 히말라야산 같은 높은 산이 존재했는지가 의문스럽다.
과학적인 탐구는 화석을 함유한 암석들의 층계가 그런 산꼭대기를 덮고 있고, 이 암석들이 물에 잠겼던 것을 보여 주고 있으며, 또한 이 암석들이 홍수 후 다시 지상에 생물의 삶이 나타난 사실을 증거 한다.
다른 한 가지 질문은“노아 방주가 사실상 그렇게 커서 노아 가족과 온 동물과 그 동물들의 먹이까지 실을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노아 방주는 길이가 300규빗, 너비가 50규빗, 높이가 30규빗, 그리고 갑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한 규빗(cubit)의 길이에 대해 여러 추정이 있으나 여기서는 18인치(1인치:2.54cm), 즉 45.72cm를 기준하여 위의 순서대로 계산하면 137.16m(300규빗)X22.86m(50규빗)=3.136(제곱미터)가 되는데 이것이 방주 한층의 면적이다.
세층을 합하면 총면적(연건평) 용적은 43.026(제곱미터)가 되므로 아주 광대한 규모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이러한 계산은 확실히 단정한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고대 사회에서 사용한 규빗이 각 나라와 지방에 따라서 일정한 측량 단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고대 애굽에서는 두 가지 길이가 다른 규빗을 사용하여 왔다.
즉, 하나는 갓난 어린 아기 키를 한 규빗으로 삼았고, 다른 하나는 어느 정도 나이에 도달한 임금의 키를 규빗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어떤 증거에 보면 노아 방주는 길이가600피트(1Feet는 30.48cm이므로 182.88m),너비가 100피트(30.48m), 높이가 60피트(18.288m)로 360만 Feet(101.941m3)가 될 것 이라고 계산하였다.
미국의 한 지방에서 소를 다른 지방으로 수송할 때 화물차를 사용하는 경우 각 찻간에 약 20마리의 소나 혹은 80마리의 돼지를 넣을 수 있는데 이것에 기준하면 노아 방주는 1,000개가 넘는 화물 찻간과 맞먹는 규모이다.
물론 이계산은 다만 노아 홍수 방주 크기를 오해하여 조롱하려는데 대해 이렇게 미국 송아지 혹은 돼지 수송 화물차와 비교 하여 계산한 것뿐이다.
이 외에도 우리가 수용 면적에 대해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각종 생물들의 크기에 따라 각기 맞는 규격의 상자나 선반들을 만들어 공간을 최대한 이용함으로써 사실상 원면적보다 몇 배나 넓게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으리라고 짐작된다.
어떤 사람은 질문하기를“어떻게 그렇게 많은 동물을, 노아 가족 여덟 명이 먹일 수가 있었을까?”한다.
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종류의 동물들을 방주에 모아 넣을 수가 있었을까?”
또 "어떻게 식물을 방주 안에서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었을까?” 한다.
이러한 질문들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질문들이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과학적으로 쉽게 설명하지 못 함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홍수 자체가 하나님의 섭리로 지상 중 어떠한 부문은 홍수에 의해 비교적 손상을 입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데, 즉 어떤 식물은 홍수 중에서도 생존하여 홍수 후에 지상에 점점 퍼지게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식물 씨를 노아가 방주에 저장했을 것이다.
이러한 질문 외에도 많은 질문이 노아 홍수에 관해 일어나고 있지만, 위의 몇 가지 질문에 대한 설명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노아 홍수는 역사적 사실이었다는 것이다.
어려운 질문 하나만 간단히 언급하고 홍수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홍수 전의 인류 역사가 얼마 동안이 나 계속되다가 홍수가 일어난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다만 추상적이고 제한된 증거 위에서 이뤄지는 설명에 지나지 않은 것을 우선 명백히 밝힌다.
창세기 3장과 6-9장 사이에 홍수전의 인류 역사가 기록되어 있고,
창세기 5장에 있는 역대기와 역대상에서와 누가복음3장에 기록된 족보와 제한된 역대기를 통해서 노아 홍수는 창조 후 약 1,656년 후에 일어난 것으로 계산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 계산은 다만 가능한 계산이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가 제시한 바에 따르면 아담이 56명의 자녀, 즉 33명의 아들과 23명의 딸을 가졌다.
창세기 4:14에 가인이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고 한 말은 이미 매우 많은 인류가 퍼진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가인이 놋(NOD)땅에 가서 도시를 세웠다.
이런 도시를 세우려면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창세기 5장에는 아담부터 10대(Generation)가 기록되어 있다.
어떤 계산에 보면 노아 홍수가 일어났을 때 세계 인구를 약 9억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상 성경의 홍수와 길가메쉬 서사시(The Gilgamesh Epic)의 홍수와 비교하여 언급하였는데 이 두가지가 어느 부분은 비슷하나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길가메쉬 서사시에 나온 홍수설화는 성경에서 보는 고상한 도덕적 정열과, 신앙적인 동기가 없다는 것이다.
즉 성경에서는 여호와께서 전 인류의 죄악 때문에 홍수를 일으켰으나 바벨론 신화는 신들의 장난으로 된 것이다.
또한 성경은 유일신론적이다.
그러나 우트나피슈팀은 다신론적이다.
그 외에도 위의 양자는 같은 점보다, 다르고 비합리적인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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