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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삼위일체와 관련한 이단

김믿소사 2007. 7. 12. 23:53

삼위일체와 관련한 이단

삼위일체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 이론을 인간의 이성에 병합시켜 이해하려고 해서 이단으로 정죄되기도 했습니다. 삼위일체에 관한 이단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그 두 가지 중의 하나는 "종속설"이고 나머지 하나는 "양태론"입니다.

먼저 종속설이란 "아리아니즘"이라고 하며 성자와 성령은 성부보다 못한 종속된 상태에서 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설입니다. 이 설은 삼위의 동등성을 부인함으로 기독교의 유일신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설입니다.

1054년 로마 캐톨릭이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갈라진 것은 이 종속설과 상당한 연관이 있습니다. 물론 후에 교회사가들이 말하기를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갈라짐은 교리적인 문제보다는 교권적인 문제가 더 컸던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교리적인 문제에서 이 종속설이 분열을 이끌어내는 결정적 논쟁거리를 제공했습니다.

그때 논쟁의 주제는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나타나느냐"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 당시 동방교회는 "하나님의 역사가 성자와 성령을 통해 흘러온다"고 주장하며 성부와 성자를 하나님의 역사를 수행하는 종속적 존재로 보았고, 서방교회는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에게 직접 올 뿐만 아니라 성자, 성령의 역사도 우리에게 직접 흐른다"고 주장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동일하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양태론이란 "사벨리아니즘"이라고 하며 "하나님은 한분인데 성부, 성자, 성령의 모습으로 자신을 계시하는 것이다"라는 이론입니다. 즉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은 하나이지만 세가지 형태로 나타난다고 하여 기독교의 유일신성을 유지하려는 것입니다. 더욱 쉽게 이야기 한다면 하나님이란 본질이 성부라는 가면을 쓰면 성부가 되고 성자라는 가면을 쓰면 성자가 되고 성령이라는 가면을 쓰면 성령이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삼위일체론을 인간이 이성이 이해되도록 억지로 설명하기 위해 이러한 양태론을 말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물의 세가지 형태를 들어 삼위일체론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즉 물이라는 본질이 어떤 때는 수증기가 되고 어떤 때는 물이 되며 어떤 때는 얼음이 되는데 이것을 삼위일체와 같다고 유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태로 삼위일체를 유추하여 양태론을 유추론이라고도 합니다. 우리 주위를 살펴 보면 이러한 형태의 어리석은 유추를 많이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태양빛, 태양열, 태양에너지는 하나이지만 세가지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삼위일체의 모습이다"고 하고 설명하며, 또한 어떤 사람은 "한 사람에 의해 나타난 생각, 말, 행동은 세가지로 나타나지만 결국 한 사람의 것인데 이것이 삼위일체의 모습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하고, 또한 어떤 사람은 "한 사람이 학교에서는 교수이고 교회에서는 장로이며 집에서는 가장인데 이러한 세가지의 역활이 결국 한 사람으로 비롯된 것이데 이것이 삼위일체의 모습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피조세계의 것을 통한 유추는 삼위일체에 대한 온전한 설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밖에 삼위일체를 밝히기 위한 다양한 유추들이 있다. 어거스틴은 지식, 감정, 의지의 심리적 통일성을 삼위일체의 모습으로 보았고, 철학자 헤겔은 정, 반, 합의 논리적 통일성을 삼위일체의 모습으로 보았으며, 올쇼우센(Olshausen)이나 쉐드(Shedd)등은 주관, 객관, 주객관의 형이상학적 통일성을 삼위일체의 모습으로 보았습니다.

삼위일체를 인간의 생각 영역으로 유추함으로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하려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다양한 양태론을 내세우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런 분들을 다 이단으로 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러한 유추들이 결코 삼위일체를 설명하기에 합당한 것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 하면 그러한 유추를 통해서 우리는 통일성 안에 있는 명확한 삼위성은 찾아볼 수 있지만 통일성 안에 있는 삼위의 인격성은 결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삼위일체론에 대한 결론은 무엇일까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 명확한 실체를 인간의 이성으로는 대답할 수 없는 것, 이것이 현 시대까지 삼위일체에 대한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마 하늘나라에 가서야 그 실체가 온전히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삼위일체론

옛날에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한 최종 면접을 볼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 어떤 목사님이 이
런 질문을 했습니다. "주후 325년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압니까?" 그때 저는 대답했습니
다. "그때 교회 역사상 유명한 회의 중의 하나인 니케아 회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
다." 그 목사님이 또 물어보았습니다. "니케아 회의에서 어떠한 일이 있었습니까?" 저는 다
시 대답했습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있어 왔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를 밝히는 논쟁
에서 최종적으로 삼위일체론이 니케아 회의에서 채택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은 저에게 권면의 말씀을 주었습니다. "앞으로 사역하는 동안 삼위일체에 대한 흔들
리지 않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왜냐 하면 수많은 이단이 이 논리를 파괴하면서 등장
했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론'은 교회사의 이단 논쟁에 있어서 가장 중심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오늘날에
도 그리스도의 온전한 신성을 부인함으로 삼위일체를 파괴하는 이단이 종종 발견되고 있습
니다. 한가지 예로 통일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실패자로 보는 시각을 들 수 있습니다. 삼
위일체론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기독교 교리의 핵심입니다. 역사상 가장 중요한 교회회의
들이 바로 이 점과 관련해서 개최되었습니다. 나중에 기독론에서 논하겠지만 교회사의 3대
회의로 일컬어지는 니케아 회의, 콘스탄티노플 회의 및 칼케돈 회의가 바로 이러한 논쟁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면 '삼위일체론'이란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과 성부와 성자는 세 가지
위치를 보이고 있지만 결국 동일 본질이다"라는 이론입니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셋이 하
나다'라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이성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도저히 납득하기 힘
든 이론이 됩니다. 누가 이론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곳곳에서 이
이론이 사실임을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 창세기 1장 26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와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
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이 말에서는 전지전능한 하나
님의 위격(인격)이 하나 이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0장 30절에서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
라." 이 예수님의 말씀도 성부와 성자의 하나됨을 이야기하며 하나님의 위격(인격)이 하나
이상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7장 22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예수님의 말씀도 하나님의 위격(인격)이 하나 이상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한 분 이상이란 말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기독교는 유일신교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기독교가 하나 이상의 신
을 인정하는 일은 기독교가 유일신교임을 포기하고 다신론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
다. 그래서 성경에 말하고 있는 바에도 충실하고 기독교가 유일신교임을 포기하지 않는 일
에도 충실하기 위해 '삼위일체론'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런 목적으로 삼위일체론
이 등장하긴 했지만 인간의 이성으로는 그 깊은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삼위
일체론은 가장 어려운 이론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평신도들의 수많은 질문이 이 주제에
쏟아지고 목회자들은 이 질문을 대답하려고 땀을 흘리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우리
는 삼위일체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어떤 사람이 다니엘 웹스터라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지
성적인 사람이 삼위일체를 믿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뛰어난 지력을 가진 사람이 셋과 하
나가 같은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요?" 그때 웹스터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저
는 천국의 수확을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삼과 일이 같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웹스터는 그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
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의미에서는 한 분이시고 어떤 의미에서는 세 분이십니다. 웹스터는
그것을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하려고 하지 않고 다만 인정하려고 했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피조물의 겸손을 역설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삼위일체론을 믿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잘 이해하기 때문이 아
니고 성경이 우리에게 그것에 대해 가르치고 또한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친히 그렇게 증거
하시기 때문이다. 이 삼위일체에 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에 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
다.

 

 하나님은 누구일까요?

이 질문은 신학에서의 여러 가지 질문 중 가장 중요하고 가장 가치 있는 질문일 것입니
다. 왜냐 하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공부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 그분"
에 대한 공부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공부는 어떻게 보면 우리들에게 가장 행복을
가져다주는 공부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궁극적
행복은 하나님을 명상하는데 있다." 프레데릭 페버(Frederick Faber)도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었다. "단지 앉아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 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 하나님의 생각을 생
각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숨쉬는 것, 이보다 더 귀한 축복은 세상에 없네..."

그래서 신앙이 깊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며 "하나님 그분"을 추구해
왔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러한 반문을 할지도 모릅니다. "신앙인이란 이미 하나님을
발견한 자들인데 또 하나님을 찾고 추구한다는 말은 모순이 아닌가?" 그러나 토저가 말한
대로 하나님을 발견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영혼의 사랑의 패러독스입니다.
이것은 너무 쉽게 만족하는 종교가들이 무시하는 것이지만, 불타는 마음을 가진 신앙인들의
행복한 경험은 이것을 무시할 수 없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시인 버나드 경도 그의 시에서 하나님을 추구하는 거룩한 경험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맛보았습니다. 오! 당신! 살아 계신 음식이여!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당신으
로 잔치하기를 갈망하나이다. 우리는 당신을 들이켰습니다. 유일한 생수의 근원이시여, 우리
영혼은 당신으로 채워지려고 갈증이 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추구가 지나쳐 주변의 일생 생활과 건전한 인간관계를 무시하고 항상 이러한 모
습 하에 살아간다면 그것은 "신비주의자의 행태"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건
전하고 바른 신앙심으로 하나님을 더욱 알고자 하고 하나님을 더욱 추구하려는 마음을 가
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한 실체를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광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단의 방화범
스펄전 목사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명상할 때면 우리의 정신을
대단히 확장시키는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에 관한 주제는 너무나 광대해서 우리
의 사고는 그 무한한 공간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또한 그 주제는 너무 심오해서 우리의
오만함은 무한대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논쟁할 수 있는 주제를 다
룰 때 우리는 일종의 만족을 느끼며 "보라! 나는 현명하다"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에 관한 이 놀라운 학문에 이르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으며
우리의 날카로운 눈은 그 높이에 미치지 못하기에 "나는 소용이 없어졌으며 이제 아는 것
이 없다"라고 겸손하고 진지하게 고백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에 관한 주제는 우리의 마음
을 겸손하게 만드는 반면 또한 우리의 마음을 확장시키는 일도 한다.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주제를 놓고 독실하게, 열심히, 끊이지 않게 연구하는 일에서만큼 우리 인간의 영혼을 성장
시키고 지적인 능력을 확장시키는 것은 없다." 이 스펄전의 말을 요약해 본다면 하나님이란
광대한 주제 앞에서 인간은 낮아짐과 겸손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또한 동시에 높아짐과 성
숙의 의미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고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에 대
해 어느 정도나마 윤곽을 그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우리
는 성경을 통해 어느 정도 하나님에 관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알게
하는 거의 유일한 안내자요 교사입니다. 물론 자연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나타남을 우리는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신비주의자들은 계시와 환상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나타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자연과 개인적인 계시와 환상을 통해서는 "하
나님이 누구인가"를 거의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주의 구조에서 조물주의 영광을 설명하기 위해 그렇게도 많은 등불이 우리를 비춰주고
있지만 그것은 헛될 뿐이다."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자신을 알리신 것은 오직 성경뿐입니
다.

그러므로 여러 성경 구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가"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대답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기에 대해 말씀하신 출애
굽기 3장 13-14절 말씀입니다.

이때 모세가 하나님의 보냄을 받으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말할 것
인지를 물을 때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스스로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란 무엇을 말합니까? 이 말은 자존하시는 하나님, 자족하시는 하나님, 영
원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스스로 있는 하나님"은 어떤 인간 협력자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이 진리는 아마 많은 사람에게 어떠한 진리보다 받아들이기 힘든 진리인지도 모릅니다. 왜
냐 하면 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세상을 통치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시는 일에 있어서 인
간 협력자를 찾으시는 활기 있고 다정하고 연민을 품은 할아버지와 같은 분으로 상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창세기 3장 22-24절은 하나님의 특권에 인간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조치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자존하시고, 자족하시고, 영원히 계신 하나님의 영역에 침범할
수도 없고 침범해서도 안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성경이 가르쳐주고 있는 하나님의 속성
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성경에 나타난 수많은 하나님과 관련한 구절들을 분석해서 학자들은 하나님의 속성을 다
음과 같은 세 가지로 보편적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절대적 속성, 상대적 속성, 도덕적 속성
이 바로 그것입니다.

절대적 속성이란 내재적 속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으며 이 속성은 피조물이나 다른 것과
의 관계를 떠나서 생각될 수 있는 하나님의 고유한 속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범주
에 속하는 것으로는 영원성, 광대성, 불변성, 완전성 등이 있습니다.

상대적 속성이란 활동적 속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으며 이 속성은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가지는 하나님의 성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는 편재성, 전능성,
전지성 등이 있습니다.

도덕적 속성이란 상대적 속성 중에 특별히 인간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가지는 성질이라
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는 거룩성, 사랑, 공의, 진실, 은혜 등이 있
다. 이러한 여러 가지 하나님의 속성들은 성경을 통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우리들에게 친근하게 느껴지고 중요한 하나님의 속성은 요한 일서4장
8절(7-12절)에 나타난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는 표현일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사랑하
시기를 그치신다면 하나님이시기를 그치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왜냐 하면 성경은 구구
절절이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실만 분명히 알고
있어도 신앙은 넉넉한 기초를 가진 셈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심령에 확실하고 바른 하나님 신관이 자리하기를 바랍니다.

 

출처 : 모 세(Moses)
글쓴이 : 모 세(Moses)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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