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복음

[스크랩] 율법이 그리스도인들의 생활규범이 될수 없는 이유

김믿소사 2008. 4. 6. 00:35

율법이 그리스도인들의 생활규범이 될수 없는 이유/ 글쓴이 / 최야곱

 

많은 목회자들이 구원받는데는 율법이 필요없지만,

구원받고 난 뒤에는 율법이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이다라고 설교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기독교를 아주 저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식은 율법조문을 육신적 극기로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생명의 삶을 살아내는 것인데,

율법을 생활규범으로 제시하는 사람들은,

성령으로 인도되는 삶이 무엇인지를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거나,

그냥 인간적인 상식으로 별 생각없이 말하는 것일 겁니다.

 

율법은 결코 그리스도인의 생활 규범이 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율법은 더 이상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이 될 수 없다는 말에

크게 오해하여 도덕 폐지론자와 같은 의미의 율법 폐지론자라는 말을 사용하며

사악한 자인 것 처럼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더 이상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이 될 수 없는 것은,

율법이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이 되기에는 너무 수준이 낮기 때문입니다.

 

도둑질 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이런 계명을 지키는 것을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으로 하기에는 너무 수준이 낮습니다.

그런 것은 타 종교의 사람들도 얼마든지 지킵니다.

 

율법은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고 했지만,

주님께서는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생활규범이란, 율법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 그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주님이 되시고, 그분이 인도하시는대로 따라가는 삶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말씀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문자로 기록되어 육신적 의지로 지켜지는 것이 아닌,

우리 심령에 심겨진 영적 생명의 능력으로 지켜지는 것들입니다.

 

율법이 생활규범이 되어야 할 사람들은,

오히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바로 타락한 사람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마도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으로 율법을 제시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르치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거듭나지 않았거나

성령이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사람일 수 있으니까요.

 

성경은 이것에 대해 명쾌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딤전 1:9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 "

- 자세히 보십시오.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해 세운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갈 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

 

또 이 성경구절을 보십시오.

롬 7:7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개정개역성경)

분명히 율법조문의 묵은 것으로 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율법이 우리의 생활규범이며,

우리는 율법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우기는 사람들은

도대체 성경을 믿는 것인지, 자신을 믿는 것인지 알 수없는 노릇입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제가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이 더 이상 우리의 생활규범이 아님을 말씀드리는 것은,

많은 목회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기 위해서는 율법이 필요없지만,

구원받은 후에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면서,

가만히 각종 구약적 의식들을 끌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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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은 자신이 율법 아래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법아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고전 9:20,21)

 

그리스도의 법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따르는 자들의 공통된 법으로

그것은 결코 율법과 동일시 될 수 없는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이며, 사랑의 계명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따르는 자들은 마땅히 "그리스도의 말씀에 착념"(딤전 6:3)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이 더 이상 생활규범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말하자면,

법이 가지는 문자적 한계때문이기도 합니다. 

 

자식을 미워해서 밥을 굶기는 계모가 있다고 합시다.

그에게 "아침 밥은 꼬박 꼬박 먹여라"는 법을 만들어 놓으면,

이번에 그는 밥만 먹이지, 아무런 반찬도 안 해놓습니다.

그러면 법을 더 만들어야 합니다. "반찬도 꼭 만들어 먹여라"

그러면 계모는 반찬은 만들되 아주 짜고 맛없게 만듭니다.

그러면 또 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녀가 먹을 수 있도록 맛있게 만들어라"

엄마의 진정한 사랑을 과연 몇 가지의 법을 세워야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수천가지의 법을 만들어도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대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하라"는 법을 만들면 되지 않는가라고 쉽게 말할 수 있으나,

그런 가시적 행위가 아닌 마음에 속한 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조차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린 경험해왔습니다.

 

어떤 여자에게 혐오스러운 남자를 붙여주고, 사랑하라고 하면 그가 무슨 방법으로 그를 사랑합니까?

물론 그에게 모든 봉사를 해줄 수는 있지만, 사랑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속한 것은 마음을 감동시키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것입니다. 

율법은 그것에서 항상 한계를 보였습니다.

그것은 율법이 불완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과 문자가 가지는 한계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단지 문자로 그리스도인들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우리 마음의 심비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율법이 생활규범이 된 사람은 자신이 순종한 만큼 스스로 교만해지고, 남을 판단합니다.

남이 자기보다 못할 경우 그를 멸시합니다.

매일 4시간씩 기도하는 사람은 만나는 사람마다 몇 시간씩 기도하는지를 묻습니다.

매일 성경 10장씩 읽는 사람은 만나는 사람에게 성경 몇 장씩 읽는 지를 물어봅니다.

그들은 그것이 상대방의 신앙을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법(사랑의 법)이 그 마음에 새겨진 사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사랑합니다.

간음한 여자를 예수님께 끌고 왔을 때

돌을 든 사람들 마음 속에는 율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결국 사랑이 그 여자를 살렸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생활규범으로 삼았지만,

그들은 세리를 멸시하고 그들을 멀리하며, 자신의 모범적 생활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리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셨으며,

기꺼이 죄인들과도 함께 식사했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사랑의 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생활규범인 사람은,

예수님께 온 부자청년처럼 종종 자신이 율법을 다 지켰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법이 생활규범인 사람은 결코 그런 착각을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법을 품지 않고,

율법을 품음으로 형제들을 비난하고 판단하고, 넘어질 돌을 그 앞에 둡니다.

 

율법의 도덕적 부분은 그것이 율법이 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법에 속하기에 당연히 지켜야 되는 것이거늘,

도덕적 부분의 당연함을 들어, 율법을 생활규범으로 제시하기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혼란 속에 율법의 각종 의식법까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율법을 이용해서,

예배당을 성전으로,

헌금을 제사로,

목사를 레위인으로,

주일을 안식일로, 

기타 십일조와 각종 절기를 지키는 등 구약적 그림자를 본받아 새로운 그림자를 만들어냄으로

막상 그림자가 말하는 참된 형상을 보지 못하게 하고 있기에 이런 주제의 글을 올리는 것입니다.

 

------------------< 꼬리글 >------------------

 

그렇습니다. 대다수의 상고(목사)들이 복음으로 한 영혼을 옭아 율법으로 옭아 매어,
자기들의 발 아래두기를 무슨 짐승같이 합니다. 08.01.11 08:58

"그러나 율법이 더 이상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이 될 수 없는 것은,
율법이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이 되기에는 너무 수준이 낮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동의하지만
수준이 낮기 때문이라는 말은 성경적이지 않은것 같습니다.
율법은 거룩하며 완전합니다. 문제는 우리 사람입니다.
사람이 문제인 것이지 율법이 문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08.01.11 07:30
좋은 지적이십니다. 제 말은 수준 낮다는 것은 법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법의 한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08.01.11 15:57

그렇다면 그 완전한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해결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죄와 우리 옛 사람을 십자가에서 끝장내 버려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옛 사람이 끝장난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새 사람이 되어졌기 때문에 그 새 사람으로 살아갈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옛 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 놓은 사실이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 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우리가 구원 받았듯이 성화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08.01.11 07:30

많은 목회자들이 말하길.. 구원받기 위해서는 율법이 필요없지만, 구원받은 후에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 ---
한국교회 지금 거꾸로..말하고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알게 해주는 거울이므로 율법에 자신을 비추어 죄인인음 깨달아
 오직 믿음으로 죄들의 사면을 받는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율법이 죄를 알게 해주는 거울의 역활로서 필요합니다.>-----
구원을 얻은 사람들은 지나간 법인 <죄와 사망의 법인>율법과 아무 상관없고 그리스도의 법<생명과 성령의 법>
아래 있는 것-복종하는 것-입니다. 08.01.11 11:16
한국교회의 목사들은 완전 거꾸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국교회에는 온통 죄인들 뿐인 겁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란 엄밀히 말하면 의인이 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죄인이었던 옛 사람이 죽고 모든 죄들의 사면을 받아 하나님의 앞에 의롭다함을 얻은 ..죄에서 해방된 사람들 ..
세상-죄-에서 분리되 사람들> 08.01.11 10:53
갈라디아서 3장 10절--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다 저주 아래 있나니..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다시태어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되고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은 사람이
 죄와 사망의 법인 율법으로 다시 돌아가서 율법을 지키고 율법아래 있어야 한다면 도대체 말이되는가? 08.01.11 11:09
출처 :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글쓴이 : yes24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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