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권해서 내 집을 채우라”(눅 14:15-24)
신학자 반 하우스(Van Haus)는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을 가르쳐 ‘자폐증 크리스챤’이라고 말했다. 자폐증의 특징이 무엇인가?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당당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그것이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하면서도 잘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 성도들은 영적 자폐증 환자는 아닌가?
어느 교회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설교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먼저, ‘어떤 설교를 듣기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축복에 관한 설교(46%), 상한 심령과 병고침에 대한 설교(28%), 그 다음이 전도에 대한 설교였다고 한다. 전도를 할 때 부담스러워서 전도 방법에 관해 듣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하튼 설문 조사 결과다.
그리고 ‘어떤 설교를 들을 때 가장 짜증납니까?’ 그러니까 회개 설교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전도 설교, 그 다음이 헌금 설교 였다고 한다. 그 다음에 ‘신앙생활에 있어서 제일 부담되는 설교는 무엇입니까?’라고 하자, 그 첫 번째가 전도설교였다.
여기서 살피자. 전도 설교가 부담스러운 설교니까 목사는 하지 말아야 하고, 성도는 그런 설교 안 들어도 되는가? 아니다. 성경은 전도에 관해 수없이 말을 하고 있다. 그러니 목사는 당연히 전도에 대해 설교해야 하고, 성도들은 그것이 비록 부담스럽다 해도 전도 설교를 들어야 한다. 오늘 하려고 하는 설교도 전도설교다. 특히 그 내용이 많이 부담스러운 설교다. 그러나 성경 말씀이므로 전해야 하고 우리는 들어야 한다. 본문에서 몇 가지를 살피자.
1.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하나님 나라는 항상 모든 것이 풍부하게 준비되어 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말할 수 없는 성령님의 오묘한 역사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와서 구원을 받을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준비되었다. 데려오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이 하신다.
빌립보 교도소의 간수장을 전도하여 가족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 바울
한 번만 와보라고 해서 교회에 데려다 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고민. 그러다가 행 13:48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우리가 믿게 하는 것 아니다.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은 다 준비되어 있으시다. 구원을 계획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성취하시고, 성령님을 보냄으로 우리를 구원할 모든 준비를 다 하고 계신다. 구원은 하나님의 사역이다. 이것을 잊지 말자.
2. 강권하라.
우리가 전도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 봉독한 말씀에서 한 가지를 살피자. 그것은 바로 ‘강권’이란 말에 있다. “강권”이란 헬라어로 ‘아낭카손’이다. 이것은 물리적인 강제력을 사용해 데려오라는 말이 아니라, 끝까지 설득해 데려오라는 의미다. ‘기어코 설득하여’, ‘억지로라도’, ‘최선의 방법을 다하여’라는 뜻이다. 즉, 초청을 받는 사람이 사양한다 할지라도, 거기에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설득해 초청을 받아들이도록 하라는 의미다. 욕을 먹더라도, 돈이 들더라도, 선물 공세를 펴서라도, 억지를 부려서라도 데려오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강제를 싫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의 전도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하철 전도, 차량에 확성기 전도 등. 사실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전도방법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너무 예의를 차리고 무례하지 않게 전도를 하려고 한다. 강권하지 않는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주인은 강권해 데려오라고 한다.
사실 강권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아이가 아픈 데 약 먹는 것을 싫어한다. 그렇다고 약 먹이지 않는가? 한 손으로 양볼을 눌러 강제로 입을 열고 숟가락에 담긴 약을 입속으로 밀어넣는다. 왜 그렇게 강권하는가? 아프니까, 나아야 하니까. 어느 여인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잡을 곳이 마땅치 않다고 그냥 죽게 놓아두는가? 강제로 머리채라도 잡아서 끌어 올려야 하지 않는가? 기차길에서 치어죽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옆구리를 발로 차서라도 넘어뜨려 살려야 하지 않는가? 그런 상황에서 점잖고 예의 차리고 그래야 하는가? 사실 그런 때는 강권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신 분이시다. 그러나 그 분이 우리를 구원하는 일에는 강권적인 방법을 사용하신다. 인격적으로 좋은 방법을 통해 믿도록 초대하는데, 우리가 거절할 때는 아프게 하거나 사고가 나게 하거나 문제를 일으켜서 하나님 앞에 빈손들고 나오도록 만드신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 5:14)고 고백한다. 바울도 하나님의 강권에 의해 예수를 영접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나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강권하시고 강권하라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영혼 구원에 있어서는 강권해야 한다.
강권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에 대한 부작용이다. 강권했다가 더 나쁜 인상을 줄까봐. 따라서 기도하며 부작용을 최소화하되, 전도는 기본적으로 강권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설교 마지막에 영상을 하나 보겠지만, 구원 문제는 사람이 천국에 가느냐, 지옥에 가느냐를 결정짓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3. 내 집을 채우라.
잔치 때 다 준비하고 손님들을 초대했는데 오지 않은 경우, 주인은 황당하다. 본문의 주인이 그런 심정이다. 그래서 주인은 본문에 세 번씩이나 종들을 보내 집을 채우려고 한다.
첫 번째 대상 : 미리 예약을 해둔 상태 - 거부, 유대인
두 번째 대상 : 거리와 골목 - 가난한 자, 몸 불편한 자, 맹인들, 저는 자들
세 번째 대상 : 길과 산울타리, 즉 성밖이다 - 아무나. 이방인 의미
집이 차기를 바라는 것, 바로 하나님의 심정이다. 천국에 구원받을 자들이 차기를 바라고, 또 당신의 교회에 구원받은 영혼들이 차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은 빈 자리를 싫어하신다. 있어야 할 곳에 그 사람이 있기를 원하신다. 목회자도 주일에 빈 자리를 보면 안타깝고, 빠진 사람을 보면 안타까운데, 하나님은 어떠시겠는가? 자기의 자리를 비우지 말자. 그리고 채우라. 이것이 잔치를 베푸신 주인의 뜻이요 심정이요 소원이다.
4. 종의 순종이다.
본문에 종은 단수로 나온다. 주인이 모든 종들을 상대로 말한 것이 아니라, 종들의 우두머리에게 말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종 혼자서 이 모든 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종의 우두머리든든, 나머지 종들이든, 그들은 주인의 명령에 열심히 순종한다. 세 번 다 열심히 나가 주인의 말대로 행한다. 종들의 사명은 주인의 뜻을 손님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초대에 응하든 응하지 않든간에. 그리고 강권해서라도 빈 자리를 채우라는 말에 나가서 강권한다. 남에게 강권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주인의 명령이기에 그들은 순종한다. 만일 주인의 명령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부담스럽다고 순종하지 않는 종이라면, 그들은 악한 종이요 무익한 종이다.
5. 결론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래서 주님은 강한 명령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전도할 것을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마28:19). 하나님은 강권해서라도 당신의 집을 채우기를 원하신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다. 빈 자리가 없길 원하신다. 가득 차기를 원하신다.
흔히 전도는 영혼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맞다. 그러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도 해야 한다. 영혼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서도 그냥 채워야 하는가? 맞다. 오늘 말씀이 이를 가르쳐 준다. 강권해서라도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주의할 것은 생각을 제한하지 말라는 것이다. 본문에서 초청의 대상이 나중에는 성밖 길과 산울타리까지 확대된다. 성 밖 그 먼거리에서 사람들이 올까? 그래서 초청하지 않는다면... 순종하지 않는 종이다. 그들이 오고 안 오고는 그들 몫이다. 우리는 초청할 뿐이다. 우리 교회의 약점, 먼 거리의 사람들이 온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거리가 멀어서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우리 생각이 우리 자신을 제한하는 것이다. 대형교회 교인들... 멀리도 잘 다니고 먼 곳에 있는 성도들도 전도해 데려온다. 그리고 작은 교회보다 큰 교회들이 더 열심히 전도한다. 상식적으로 보면 작은 교회들이 더 열심히 전도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렇지 않다. 전도하자. 생각으로 미리 차단하지 마라. 하나님이 하신다.
동영상을 하나 보자. “지옥에서 온 편지”라는 동영상이다. (네이버 검색창에 '지옥에서 온 편지'를 친 후 나오는 첫번째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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