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영성 최대의 적 '부정직함'
이전 글에서 깊은 영성의 가장 무서운 적이 '게으름'이라고 나누었습니다. 이번에는 정직하지 못함이 우리의 영성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 나누기 원합니다. 영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이므로 우리의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 같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는 반드시 육적인 우리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창조하셨고, 또 그렇게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하십니다. 그래서 영적인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보이는 세계로 나타나기도 하며 반대로 보이는 세계의 영향을 받아 보이지 않는 세계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 두 영역은 따로 나뉠 수 없는 것입니다. 영과 육을 우리가 따로 떨어뜨려 이야기 하나 실은 떨어뜨릴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 고백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영역에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깊은 영성으로 가는 길목에 또 하나 건너야 할 강이 정직함입니다. 게으름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두 번째로 이 정직함의 문제를 넘어야 깊은 영성으로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또 거듭 강조한 것인 정직함의 삶입니다. 신명기 6장 18절 이하에 보면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전반에 걸쳐 거듭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 정직함을 통해 약속하신 기업을 받겠다, 라고 말씀 하십니다.
정직함은 곧 성결과 거룩으로 가는 것이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믿음의 선진들을 보면 정직함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또한 정직함을 인정받았습니다. 사무엘상 29장에 보면 아기스가 다윗의 정직함을 인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매우 정직하였습니다. 솔로몬도 열왕기상 3장에서 아버지 다윗의 정직함을 이야기 합니다.
열왕기상 15장에는 다윗에 대해서 우리야의 일 외에는 그는 정직한 일만 행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2장에는 여호사밧 왕의 정직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18장과 22장에는 히스기야왕과 요시야왕의 정직함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 인정받았던 믿음의 선진들은 정직함을 매우 중요한 성품으로 보았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왜 정직함이 깊은 영성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일까요? 그것은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정직함은 거룩과 성결에 바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는 정직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정직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가며, 악을 멀리하는 첫 번째 성품인 것입니다. 욥기 1장에서 욥을 바로 그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깊은 영성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또 그 가운데 순종과 영적 부지런함으로 나아가며 악을 멀리해야 함을 압니다. 바로 그 단계에서 정직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영성'이라는 것은 '상황과 환경에 관계없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영적 성품'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가 정직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만나는데 장애가 매우 클 것입니다. 또한 그 장애를 통하여 하나님과 소통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으며, 그분의 깊은 임재 안에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하시므로 부정직함과는 결코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정직함은 바로 신실함이며 한결같은 것입니다.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직함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 예배의 기초입니다. 시편 33장1절에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정직하지 못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어떻게 깊은 영성을 소유하겠습니까?
그런데 요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정직하지 못함을 봅니다. 큰 문제입니다. 입만 열면 거짓을 이야기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영은 언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언어를 통해서 그 사람의 성품은 전달됩니다. 그 안에 정직하지 못함이 있다면 그의 언어는 부정적이고, 거짓을 늘 말할 것입니다. 그것은 습관과도 같은 것이어서 그 엄청난 결과를 알지 못하고 거리낌 없이 이야기 합니다.
그 정직하지 못한 성품을 품은 상태로 기도하고 예배한다면 그 사람은 온전한 기도와 예배를 드리지 못할 뿐더러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정직은 바로 하나님께서 보시는 우리의 얼굴과도 같습니다. 누군가 대면할 때 얼굴이 더럽다면 어떨까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기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정직함이 있어야 합니다.(시 15:8)
너무 쉽게 이 정직함을 포기합니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는 것처럼 정직하지 못한 말과 행동을 합니다. 오늘날 여러분 주위를 보십시오. 냉정하게 분별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사소한 것에서 부터 우리는 이 정직함의 도전을 받습니다.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고, 심지어 하나님을 속입니다. 주의 종이요, 목회자라고 하는 분들까지 이 정직함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는 철저히 드러내고 판단하면서 자신의 죄는 포장하고, 변명하며, 관대함으로 대합니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한 뼈저린 회개는 없습니다. 어물쩍 다시 그 직분만 쓰게 됩니다. 과연 그 사람이 의인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인 우리가 의인인데,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라고 이사야 26장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정직하지 못합니까? 그 엄격한 잣대로 저와 여러분의 삶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 믿음의 삶을 살지 않습니다. 그는 마음이 교만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정직함은 깊은 영성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대문과도 같습니다. 그 문을 통과해야 우리 의인의 삶이 믿음의 삶이 될 것입니다.(하박국 2:4)
교회 안에서 또는 우리의 삶 가운데 스스로 정직하지 못함의 모습은 아주 미세한 바위의 틈과도 같아서 그 틈으로 물이 새어 들어오는 것처럼 사단의 영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정직하지 못함에 대해서 아주 단오하게 책망하셨습니다.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아이성의 패배는 단 한사람 아간의 부정직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도 바로 교회와 하나님의 질서에 도전하는 부정직함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삶속에는 우리 교회 안에는 이 부정직함이 버젓이 들어와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속이는 일까지 생기고 있습니다. 진리가 왜곡되고 있습니다.
개인적 부정직함은 너무도 만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원하신다면 절대 정직하지 못한 말과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틈새로 바로 어둠의 영들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어둠의 영은 여러분들을 서서히 병들게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거짓을 말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도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위해서 사람들을 속이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제일 심각한 개인적 부정직함의 모습은 바로 이중적 신앙생활입니다. 소위 말해서 양다리 걸친 삶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교회에서는 모범적 성도나 교역자로, 교회 밖에서는 세상적 사람으로 살아가는 많은 영혼들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이 이중적 삶은 바로 하나님과 자신을 속이는 부정직함의 최고의 모습입니다. 다음번에 도덕성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겠지만 이것은 도덕적 삶과도 매우 중요한 연결점이 있습니다.
깊은 영성은 교회나 기도원에서 작정기도를 하고, 금식기도를 하고, 어떤 종교적 행위를 많이 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깊은 영성은 바로 우리 육신의 삶을 온전히 믿음으로 지배할 때 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이 정직함은 우리 영성의 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여러분들의 삶에 습관적인 부정직함이 있다면 단호하게 잘라내십시오. 여러분 자신에게만큼은 절대로 관대해서는 안 됩니다. 몸부림치셔야합니다. 기도하셔야합니다. 그리고 처절한 싸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 깊은 영성을 소유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아니 흉내도 내지 마십시오. 나에게 정직하지 못한 모습과 언어가 있다면 이미 나는 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흉내는 낼 수 있으나 능력은 없는 사람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숨기거나 속이지 마십시오. 그 가운데 정직함은 무너집니다. 필자도 이 정직함에는 매우 약한 사람입니다. 그 혹독한 대가를 지불한 경험이 있습니다. 선의라는 이름을 붙여 거짓을 포장하지 마십시오. 특별히 주의 사역자들에게 권면 드립니다. 성도들을 속이지 마십시오. 성도들께서는 목회자들을 속이지 마십시오. 곧 내 자신은 깨어진 영성을 가지게 될 것이며 그 공동체는 분열될 것입니다. 바위틈에 스며든 물은 언젠가 반드시 그 바위를 쪼개어 버릴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정직하지 못한 삶이 내 삶 전체에 아주 미세한 틈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틈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 틈을 메우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 정직함으로 나아갈 때 영성은 더욱 깊어지며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의 단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정직함은 마치 보이지 않는 나무뿌리가 우리 눈에 비추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정직하다면 우리 삶은 우리의 내면적 정직의 영성을 사람들에게 비추어 줄 것입니다. 그 정직함의 삶이 보여 지게 되는 것입니다. 숨기는 것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가면을 쓴 신앙이라면 가면을 벗어야 합니다. 가면을 아름답게 치장하여도 그것은 가면일 뿐입니다. 내 자신의 얼굴이 나타나야 그것이 진짜입니다.
당신은 진정한 크리스천입니까? 지금 내 삶을 진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작은 먼지라도 붙어 있다면 털어 버리십시오. 그리고 만약 내 삶과 언어에 부정직함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철저한 회개의 기도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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