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벧전 5:6-11)
사람이 인생을 사는 것이 70-80년입니다. 요즈음은 90년까지도 산다고 합니다만 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속상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가슴이 다 타들어가는 듯합니다. 가슴에 화가 쌓여서 홧병이 생겼다고도 하고, 속이 너무 타서 내 속을 열어보면 속이 다 시커멓게 탔을 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너무 화가 나서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기도 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 다 이렇게 힘들게 살아갑니다.
우리가 먹고사는 일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직장생활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요즘은 조금만 나이를 먹고 조금만 무능해도 경쟁에서 밀려나 낙오자가 됩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직장에서 쫓겨나게 되고 쫓겨나게 되면 다시 일자리를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가 어렵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만큼 살아가는 것도 사실 몇몇 대기업 때문에 살아나가는 것이지 중소기업을 하는 사람은 말로 할 수가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접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할 수도 없고 발만 동동 구릅니다. 온 재산을 다 털어 넣고 온 식구가 다 달려들어서 하는 일이지만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중소기업을 하는 사람들의 친지들까지 다 어려워집니다. 있는 재산은 다 은행에 담보로 들어가고, 빚보증서고 그렇게 해도 앞이 보이지 않아 자살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나마 일자리가 있는 것은 다행입니다. 특별히 일자리가 없어서 집에서 빈둥거리고 노는 실업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아침을 먹고 출근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릅니다. 제가 얼마 전에 택시를 탔는데 “경기가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너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경기가 안 좋다는 데 어떻게 그렇습니까?” 하고 다시 물었더니 “요즘처럼 일자리가 없어 고생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렇게 아침을 먹고 출근한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감사합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힘들게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을 못하는 청년 실업자, 능력있는 사람도 일자리가 없어 그대로 능력을 썩히는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또 사람들 때문에 속상한 일도 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식구들 때문에 당하는 아픔과 속상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부모와 남편과 아내 자녀 때문에 속상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 보니 가정폭력상담소에 찾아오는 사람 중에 아내에게 맞아서 찾아오는 남편이 많다고 합니다. 아내에게 매맞는 남자들이 그렇게 많은 것입니다. 남편들이 돈을 벌지 못하니 집안에서 힘이 없는 것입니다. 힘이 없으니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자식 때문에 속상한 것입니다. 자식 때문에 속상한 것은 누구에게 이야기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자식 때문에 부부가 이야기하다보면 부부싸움을 하기가 일쑤입니다. 자식 때문에 기쁜 일도 많지만 자식 때문에 당하는 고통은 뼈를 깎고 창자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하도 속상해서 내 자식 아니라고, 호적을 파가라 인연을 끊자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을 우리가 지고 가야할 평생의 불교용어로 업보라고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에게 당하는 상처와 아픔이 많이 있습니다. 뺨 한대 맞으면 아프다 마는 것이지만 사람들 때문에 당하는 상처는 우리의 마음을 헤집고 마음에 못을 박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은 못하지만 다른 사람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은 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을 다짐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하루는 사람 때문에 기뻐하고 하루는 사람 때문에 슬퍼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우리를 속상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도 힘들지만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남편과 아내 때문도 아니고 자식 때문도 아니고 다른 사람 때문도 아니고 나 자신에 대해서 속상한 일이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실수를 합니다. 분명 내 잘못입니다. 그것 때문에 속상해합니다. 스스로를 자책하고 탓하게 됩니다. 또한 나만이 겪는 아픔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갑자기 찾아오는 병이 있습니다. 내가 병이 들어 가족과 친구들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고 하고 염려하지만 그것이 무슨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 육신의 질병은 스스로가 지고 갈 수 밖에 없는 아픔입니다. 나 자신을 보면 참 무능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속상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 하나 하지 못할까 속상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이 생기면 당황스럽고 눈앞에 깜깜하여 허둥대며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때로는 갑자기 나에게 찾아온 불행을 믿지 못하고 이것이 꿈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인생의 아픔을 당할 때 당황스러운 일을 당했을 때 첫째로는 그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에게 일어난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마음에 분노가 일어납니다. 속상하고 화가 납니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원망하게 됩니다. 내 잘못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 탓을 하고 남편은 아내 탓을 합니다. 부모 탓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안 되면 조상 탓이라고 조상을 탓하기도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교회 탓을 하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서 불평하고 말썽을 피우는 사람들은 대개 집안에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일이 행복한 사람은 절대 교회에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 일이 안되기 때문에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새벽마다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주무시는 새벽에 저는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서 여러분이 하는 사업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여러분에게 문제가 있으면 여러분이 교회 탓을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 탓을 합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자학을 합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인생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아이엠에프 후에 우리나라에 노숙자들이 생겼습니다. 자신이 처한 현실이 너무 힘들어서 현실을 도피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정부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지만 별효과가 없습니다. 붙잡아두어도 다시 나갑니다. 다시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힘들게 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냥 다 포기하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 겪는 일입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인생의 위기를 시험이라고 말합니다.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에 대해서 이 인생의 위기는 나 혼자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겪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 혼자만 겪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겪는 것입니다. 목사인 저도 견딜 수 없는 고난과 아픔이 있습니다. 속상할 때 많이 있습니다. 벧전 4장 12절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불시험이 닥치더라도 이상한 일처럼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상히 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나옵니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벧전 5장 9절도 같은 말씀입니다.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잇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동일한 고난을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인생길을 가는 사람은 다 당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벧전 5장 6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모두 하나님의 손아래에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아래에 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시험의 원인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 해결의 열쇠도 하나님의 손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일이 있을 때 입을 다물고 겸손해야 합니다. 내 인생에 시험에 닥칠 때 이것은 하나님이 나의 인생을 간섭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겸손해야 합니다. 속상하고 화를 낼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다른 사람을 탓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 우리가 읽은 구약 본문 민수기 22장은 제가 아주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발람이 모압의 고관들과 나귀를 타고 함께 가니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들고 막아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발람이 나귀를 때렸습니다. 우리가 노력하고 애를 써도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탄 인생의 나귀가 멈추어 선 것입니다. 그 길로 가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빼들고 우리의 길을 막고 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길을 타고 가는 나귀가 앞으로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획한 길로 원하는 길로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을 막아서신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길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빼들고 막아서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우리의 눈에 그 사자가 보이지 않은 것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실패를 주시고 환란과 고난을 주시는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우리의 죄 값으로 받는 시험입니다. 우리의 잘못으로 인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바알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셨습니다. 때로는 질병으로 기근으로 굶주림으로 이방인으로 그들을 괴롭힘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죄 값을 물으셨습니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 있는 모든 환난과 고통도 우리의 죄 값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때 꼭 기억할 것은 첫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으므로 비록 그런 경우가 당하더라도 해결책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지은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우리가 환란을 당할 때 이것이 우리의 죄 값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돌이켜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하여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의 환란을 없애주십니다.
두 번째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놀라고 당황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 때문에 화를 내거나 속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약해 하나님의 계획을 보지 못하지만 우리를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시험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담히 그 시험을 견디어야 합니다. 자식을 통한 연단, 사업을 통한 연단, 모든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시는 이 모든 시험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믿고 언젠가 이 시험과 연단을 통해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의 길 은혜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닥친 이 큰 환란 앞에 모든 일이 다 하나님 앞에 있음을 기억하고 겸손하게 엎드려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하나님께 겸손히 엎드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은혜의 길 축복의 길 긍휼의 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기도할 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임하는 귀한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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