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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경적 기독교*3* (기독교 신관)

김믿소사 2007. 7. 7. 16:59

제 3 장, 기독교 신관

 

1, 하나님의 속성

1) 하나님은 전능성을 가지셨다.
2) 하나님은 성실성을 가지셨다.
3) 하나님은 주권성을 가지셨다.
4) 하나님은 영원성을 가지셨다.
5) 하나님은 자비성을 가지셨다.

2, 하나님의 사역

1) 하나님은 모두를 작정하셨다.
2) 하나님은 인간을 예정하셨다.
3) 하나님은 작정을 이루신다.
4) 하나님은 예정을 이루신다.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
* 사 42:5 ~ 9 *

기독교 성경관을 분명하게 밝힌 다음, 기독교 신관을 논하는 것은 논리상으로 매우 당연하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관이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을 통하여 정립된 신관, 즉 성경적 신관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나라마다 또는 지역마다 그 문화나 정치, 교육 등의 여건에 따라 서로가 다른 다양한 신관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한 나라나 같은 지역에서도 개인에 따라 역시 서로가 다른 각양 각색의 신관은 물론, 같은 종교를 가진 신자들 간에도 전혀 다른 신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은 사람마다 나름대로의 생각이나 철학적 바탕에 의하여 주관적인 신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는데서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이다.

이와 같은 신관들은 모두가 주관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성경에 계시된 기독교적 신관과는 판이하게 다를 수 밖에 없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을 특별히 계시하신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하여 정립된 성경적 기독교 신관만큼 정확한 신관은 있을 수 없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 등을 하나님의 사역이나 교훈으로 증거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구약성경에는 창조 기사를 비롯해서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이 계시되어져 있고,
신약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사건과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이 확실하게 증거되는 계시가 기록되어져 있다.

1, 하나님의 속성

시 136:1 ~ 5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홀로 큰 기사를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성경적인 기독교 신관을 정립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속성(attibute) 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다음에 언급될 하나님의 사역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속성은 여러가지로 설명되고 이해될 수도 있겠으나 성경에 계시된 대표적인 몇 가지 속성만을 하나하나 열거하여 기독교적 신관을 정립하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구약성경 가운데 특히 성문서에 속한다고 하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등은 창세기로부터 에스더까지의 이스라엘 역사섭리 가운데 계시된 하나님의 속성들을 특징있게 나타내어 찬양하고 있다.

1) 하나님은 전능성을 가지셨다.

욥 42:1 ~ 3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찬양은 욥기에 강하게 나타난다.
욥은 자신의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의 전능성을 심도깊게 발견하였다.
그리고 욥은 자신의 생애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전능성을 높이 찬양한 것이다.
이러한 욥의 찬양은 이스라엘 역사섭리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전능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타락하여 범죄하는 인간들 때문에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신 전능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을 삼으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손(국민)과 땅(국토)과 통치(국권)를 약속하시고 천년세월을 통하여 아브라함 후손에게 전능하신 능력으로 하나하나 이루어 주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대로 자손을 번창케 하실 때에도 이삭의 출생과정을 비롯해서 애굽에서 사백년동안 종살이와 학대 속에서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번창케 하셨고 광야 사십년동안에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으로 번창케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두번째 약속인 가나안 땅을 정복하도록 하실 때에도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요단강을 갈라서 건너게 해 주셨고 가나안 첫성 여리고성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너 뜨려서 정복하도록 해 주셨다.
그 외의 도성들도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하여 차츰 정복하도록 하여주셨고, 사사시대에도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사사들을 통하여 가나안 족속이나 이방민족들을 쳐서 승리하고 땅을 정복할 수 있도록 섭리하여 주셨다.

세번째 마지막 약속인 통치자를 세우실 때에도 이새의 아들인 어린 다윗을 들어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죽이게 하고 승리를 거두도록 섭리하셨고, 백성들의 요구로 세워진 사울 왕가를 하나님께서 무너뜨리고 유다지파인 다윗을 왕위에 오르게 하셔서 그 왕위가 끊어지지 않도록 보호하시기를 꺼져가는 등불을 마져 끄지 아니하시는 것같이 하셨다.
사울왕이 망한 후에도 많은 대적들이 나타났으나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능력으로 모두 멸해 주시고 다윗왕가를 굳게 세워 주셨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하나님의 전능성을 나타내신 특별계시 섭리의 역사이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배경삼아 문학적으로 표현된 욥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의 전능성을 강조하고 찬양하는 것이 욥기의 내용이다.

하나님의 전능성은 능력의 한계가 무한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정직하고 순전한 욥을 이유도 없이 사단에게 내어 주어서 망하게도 하시고 다시 흥하게도 하시는 섭리를 통하여 하나님은 사단도 인간의 생사 화복도 마음대로 주관하시는 전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무한대의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따라서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하다는 결과에 이른다.

2) 하나님은 성실성을 가지셨다.

시 89:1 ~ 4 (에스라인 에단의 마스길)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내가 말하기를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나의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였다 하셨나이다" (셀라)

하나님의 성실성은 주로 시편을 통하여 찬송되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시편의 찬송 주제를 말하라면 단연코 하나님의 성실성이라고 할 수 있다.

시편은 하나님의 성실성을 찬양하기 위해
1편과 2편에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언약을 찬양하고,
3편에서 89편까지에서는 하나님께 언약하신대로 구원해 주시라는 간구를 통하여 찬송하며,
90편에서 150편까지에서는 하나님께서 간구를 들으시고 언약대로 구원해 주신 은혜를 찬송한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한번 언약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 주시기 때문에 성실하신 속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시편의 찬양들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섭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열조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자손과 땅과 통치를 언약하시고 그대로 이루어 주셨다.
구약에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자손 번창기, 땅 정복기, 열왕 통치기 등 3기로 분류가 가능하다.

자손 번창기는 야곱시대로부터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지나 요단동편에 머무르고 있을 때까지를 말하고,
땅 정복기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을 함락시킬 때로부터 삼손 사사가 죽음으로 불레셋을 멸하고 승리를 거둘 때까지를 말하며,
열왕 통치기는 사울왕 패망 후, 다윗왕의 즉위로부터 시작해서 솔로몬왕 말기에 있었던 남북왕조의 분열을 거쳐 앗수르 제국에 의한 북이스라엘의 패망과 파사왕 고레스로 인한 남쪽 유다의 바벨론 포로에서의 회복까지를 말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조들과 언약하신 것들을 이루어 주시는 섭리로 가득 채워져 있다.

자손 번창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조에게 하신 자손 번창에 대한 언약을 이루어 주신 역사섭리이며,
땅 정복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조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언약을 이루어 주신 역사섭리이고,
열왕 통치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조에게 큰 민족을 이루어 다스리게 해 주시겠다는 언약을 이루어 주신 역사 섭리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약대로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여호와이시기 때문이며 성실하신 속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예 하다가 아니라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호와시며 성실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3) 하나님은 주권성을 가지셨다.

잠 16:1 ~ 4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주권성은 주로 잠언에서 강조되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잠언은 솔로몬왕이 깨달은 지혜를 아들에게도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교훈해 준 내용이다.
그 내용의 대략은 하나님의 주권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 악에서 구원을 시키시고 하나님을 아는 명철로 나라를 세우시며 세워진 나라를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다스리시는 진정한 주권자되심을 강조하고 있다.

잠언 1장에서부터 9장까지에서는 지혜로 악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가르쳐 주고
10장에서부터 24장까지에서는 명철로 나라를 세우시는 하나님을 가르쳐 주며
25장에서부터 31장까지에서는 나라를 형통하게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솔로몬왕의 잠언은 솔로몬왕 자신의 통치기간을 포함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섭리가 그 내용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부터 자손이 번창하여 약속의 땅을 정복하고 나라를 세워 다윗왕조가 세워지기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는 모두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의하여 섭리되고 이루어진 것들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조와의 언약 자체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의한 일방적인 명령으로 주어졌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언약을 이루어 주시는 것도 이스라엘의 열조들이나 자손들의 의견이라든가 행위와는 관계없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절대적 주권섭리에 의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조와 언약하시고 언약대로 이루어 주신 언약 성취 역사라는 점에서 특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약속하시고 주권적으로 이루어 주셨다는 이 놀라운 역사적 사실이 하나님의 주권성을 크게 드러내어 주고 있는 것이다.

솔로몬왕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이스라엘 역사섭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성을 발견하고 잠언을 통하여 아들에게 하나님의 주권을 교훈한 것이다.
솔로몬왕은 자기의 뒤를 이을 아들에게 진정한 주권자는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깨닫게 해줌으로써 다윗왕조가 굳게 세워지는 지혜를 얻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로서 우주와 만물의 섭리는 물론, 인간의 구원과 멸망을 영원한 작정과 예정에 의하여 주권적인 능력으로 주관하시며 섭리하신다.
뿐만 아니라 눈으로 보이지 않는 소립자나 세균으로부터 시작해서 우주에 이르는 크고 작은 모든 것들과, 작은 먼지의 이동으로부터 시작해서 천체의 운행에 이르는 크고 작은 일들을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능력으로 다스리시고 섭리하신다.

4) 하나님은 영원성을 가지셨다.

전 3:11 ~ 14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하나님의 영원성은 전도서에 잘 나타난다.
전도자 솔로몬은 하나님의 영원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해 아래에서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됨을 거듭 강조하였다.

전도서 내용을 간추려 보면,
인생들이 해 아래 살면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일들은 헛되고 헛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인생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시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잘 되게 하시고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영원하시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참된 본분임을 말해주고 있다.

전도서 1 장에서부터 4 장까지에서는 영원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한 다음
5 장에서부터 7 장까지에서는 하나님을 영원히 경외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8 장에서부터 10 장까지에서는 영원히 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11 장에서부터 12 장까지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를 영원히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설명하므로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강조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솔로몬의 전도서는 역시 이스라엘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안에서 영원한 일을 영원토록 섭리하신다.
이와 같은 하나님은 특히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계시되었다.

이스라엘 국가가 형성이 되어 다윗왕국이 세워지게 된 하나님의 역사섭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경외해야 할 하나님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며,
세워진 다윗왕조가 여러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무너지지 아니하고 존속되는 하나님의 역사섭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 경외하는 자를 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며,
다윗왕조를 떠나 북쪽 사마리아로 가서 나라를 따로 세운 북 이스라엘을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섭리는 불의한 행위에 대하여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가르쳐 주려는 의도였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역사섭리는 모두가 영원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계시하기 위하여 모형적이고 현세적인 것으로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경외를 받으시는 분이시고,
자기 백성을 영원히 형통케 하시는 분이시며,
선악간에 영원한 심판을 행하시는 분이심을 계시하신 것이다.
솔로몬의 전도서는 이와 같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섭리를 배경으로 하여 하나님의 영원성을 노래하고 있다.

하나님은 영원자존자로서 시간과 공간과 형상을 초월한 영원성을 가지고 계시다. 그러나 모든 피조물은 시공의존자로서 시간과 공간과 형상을 구비한 유한성을 가지고 있다.

5) 하나님은 자비성을 가지셨다.

아 8:6 ~ 7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하나님의 자비성은 솔로몬의 아가에 아주 잘 드러나 있다.

솔로몬은 지극한 하나님의 자비성을 자신의 애인인 술람미 여인에 대한 사랑의 노래를 통하여 묘사하고 있다.

아가의 내용을 간단하게 간추려 보면,
솔로몬왕이 햇빛에 검게 타고 거친 살결을 가진 술람미 여인과 조건없이 사랑을 약속하고 결혼한다.
그런데 신랑과 신부가 서로 헤어져 잃어버리게 되자 신랑과 신부는 서로 찾아 헤매이면서도 사랑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고 신부는 많은 상처와 수치를 당하게 된다.
그래도 신랑은 신부를 다시 찾아 상봉하게 되자 신부는 신랑을 다시 맞이할 행복의 꿈을 꾸게 된다.

솔로몬의 아가 초반부에는 술람미 여인과의 처음 사랑의 언약이 노래되고,
중상반부에는 술람미 여인과의 영광스러운 혼인잔치가 노래되며,
중하반부에는 신랑과 신부가 헤어진 상태에서 서로 사모하며 사랑하는 내용이 노래되고,
하반부에는 신랑이 신부를 다시 찾아 만나서 시도하는 사랑의 꿈을 노래한다.
이와 같은 솔로몬의 노래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섭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 초기에 열조들에게 백성 삼아 주실 것을 언약하셨다.
그리고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큰 나라를 이루게 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삼아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멀리 떠나게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주 버리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셔서 보호하시고 지켜 주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섭리는 솔로몬왕의 아가를 통하여 묘사되고 찬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무조건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는 경우에도 사랑하시며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이며 불변적이시다.
그러므로 아무런 조건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편에서 일방적이시다.
인간편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사랑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사랑하여 주신다.

아버지는 탕자가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나 아버지를 떠나 돼지우리에 있을 때나 아버지 사랑을 깨닫고 다시 돌아왔을 때나 항상 사랑했고 끝까지 사랑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들에게 위로와 징계로 나타내신다.
순종하는 자에게는 사랑의 위로를 통해 형통함을 주어 기뻐하게 하시고,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사랑의 징계를 통해 곤고함을 주어 생각하게 하신다.

형통해서 기쁠 때에는 찬송하게 되고 곤고해서 생각할 때에는 기도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찬송과 기도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는 인간에게 평강(행복)으로 응답된다.

2, 하나님의 사역

시 111:1 ~ 10
"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의 회와 공회 중에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여호와의 행사가 크시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가 다 연구하는도다. 그 행사가 존귀하고 엄위하며 그 의가 영원히 있도다. 그 기이한 일을 사람으로 기억케 하셨으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시도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저가 자기 백성에게 열방을 기업으로 주사 그 행사의 능을 저희에게 보이셨도다. 그 손의 행사는 진실과 공의며 그 법도는 다 확실하니 영원 무궁히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구속을 베푸시며 그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

앞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전능성, 성실성, 주권성, 영원성, 자비성 등의 속성들이 그의 사역을 통하여 드러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 자신의 속성을 나타낸 것(계시)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와 만물, 그리고 우주의 운행과 역사의 진행 등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며 해 가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어느 것이든지 어느 일이든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아닌 것은 없고 하시는 일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 모두를 다 언급할 수는 없고 다만 하나님께서 특별계시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이 하신 일을 성경에서 알게해 주신 내용만을 요약해서 정리하겠다.

1) 하나님은 모두를 작정하셨다.

사 46:9 ~ 11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

하나님께서 만물과 만사 모두를 작정(divine decrees)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의 주권성과 전능성에 의한 사역이시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그 크기나 모양, 또는 용도나 성질 등을 비롯해서 창조해놓으신 우주만물을 섭리하시는 과정에서 일어날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창세전에 모두를 작정하신 것이다.
이에 대한 개혁파 장로교 교회는 "하나님의 작정은 자기 의지의 도모에 의한 결정이니 그는 이로써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무릇 되어가는 일을 선정하셨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7) 고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파에서는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을 인정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다. 그것은 성경에 대한 이해부족의 결과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의한 실제적 실현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앞서 성경관에 대하여 언급하는 가운데 성경의 내용을 살핀 바가 있다.

성경이 크게 언약과 성취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작정에 기초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작정하신 계획을 창조와 섭리로 실현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종말을 처음부터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은 창세전에 모든 것을 작정해 놓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사 46:10)
즉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이루어 가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언약에 기초한 것이며, 이루어 나아가실 것에 대한 그의 언약은 그의 영원한 작정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다.

철학적 이론 가운데 우주의 모든 일, 특히 인간 의지는 항상 어떤 외적인 힘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필연론 또는 결정론(determinsm) 이 있다.
혹자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섭리가 철학적 결정론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도 있으나 얼핏 보기에는 비슷한 것 같아도 그 내용에 있어서는 판이하게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철학적 결정론은 작정의 주체가 진행 과정에 있어서의 의미나 진행 목적 등은 알 수도 없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하나님의 작정섭리는 작정의 주체나 의미나 목적 등이 분명하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분명하게 증거해 주고 있다.

2) 하나님은 인간을 예정하셨다.

엡 1:3 ~ 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의 예정(predestination) 섭리는 작정섭리 안에 포함이 된다.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이 서로 혼동이 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작정은 만물과 만사에 대한 총괄적인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하나님의 예정은 인간의 구원과 멸망에 대한 특별한 하나님의 계획을 말한다.
하나님의 작정섭리가 성경적인 진리라면 하나님의 예정섭리 역시 성경적인 진리이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자신의 기쁘신 뜻을 따라 구원할 자들을 선택해서 예정해 놓으셨다.(엡 1:4 ~ 5)
따라서 구원하시기로 선택을 받지 못한 자들은 진멸하시기로 버림을 당할 불택자들로 예정하시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창세기 첫머리에서부터 확실하게 증거해 주고 있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 그의 아들 가인과 아벨이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가인은 버리시고 아벨은 취하셨다.
그후, 아벨을 대신한 셋과 에녹, 노아, 셈, 아브라함 등의 계통은 취하시고 나머지는 버리셨고 아브라함을 선택해서 이스라엘의 조상을 삼아 큰 민족을 이루어 지상에서 유일한 하나님 자신의 백성을 삼으셨다.
그리고 같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지만 야곱의 12 아들들 가운데 유다지파를 선택해서 이스라엘의 왕조를 삼으시고 아브라함과 유다지파에서 태어난 다윗의 자손으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창세 전에 택한 자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하셔서 구원해 주신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섭리 역시 하나님의 전능성과 주권성에 의한 사역이시다.(이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고자 하면 "기독교 예정론" 을 참고 할것)

철학적인 이론 가운데 사람은 나면서부터 선천적으로 타고난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숙명론 또는 운명론(fatalism) 이 있다.
혹자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섭리가 철학적 숙명론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얼핏 보기에는 기독교 예정론과 철학적 숙명론이 비슷한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구체적인 그 내용에 있어서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독교 예정론은 예정의 주체와 섭리과정에 있어서의 의미와 예정섭리의 목적 등을 너무도 분명하게 성경에서 밝혀 주고 있다.
그러나 철학적 숙명론은 숙명의 주체는 물론 진행과정에서의 의미 또는 숙명적 진행의 목적 등을 랑 수 없을 뿐 아니라 있을 수도 없다.

3) 하나님은 작정을 이루신다.

사 14:24 ~ 27
"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내가 앗수르 사람을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발아래 밟으리니 그 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하나님께서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며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 자신의 영원하신 작정을 이루시는 결과이며 과정이시다.
지구는 물론이고 해와 달과 별들로부터 시작해서 온갖 우주 천체는 물론, 길가에 이름모를 풀꽃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소립자나 세균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하나님의 작정을 이루시는 섭리의 영역 밖에 있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어서 엿새동안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작정을 이루시는 첫번째 사역이셨다.
하나님 이 외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하신 것이다.(사 45:7)
이와 같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그의 전능성과 주권성에 의해 작정대로 이루시는 사역이시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상계에 속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그런데 그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게 되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고 계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선 빛이 비취게 하셔서 빛과 어둠이 나누어지게 하셨다.

둘째 날 역시 천상계에 속한 물을 궁창으로 웃물과 아랫물로 나누어 공간을 이루게 하시고 그 궁창을 하늘이라고 하셨다.

셋째 날에는 천하계의 물에서 뭍이 드러나게 하셔서 뭍을 육지라 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여 혼돈한 것을 질서있게 하셨다.

넷째 날에는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셔서 사시와 연한과 일자를 이루게 하셨다.

다섯째 날에는 새와 물고기를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하셨다.

여섯째 날에는 땅의 생물, 육축, 짐승 등을 종류대로 만드시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만드셨는데 흙으로 사람을 지어 생기를 코에 불어 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
그리고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로 만들어 남자와 한몸이 되게 하신 후, 하나님은 이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해서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복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우주와 만물들 하나 하나를 보전하시고 주관하신다.
우주의 운행, 광물, 식물, 동물, 인간 등의 생성과정들도 일일히 주관하시며 섭리하신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는 모두가 그의 전능성과 주권성에 의한 사역들이다.

일반학문의 이론 가운데 생물이 외계의 영향과 내부의 발전에 따라 단순에서 복잡으로, 하등에서 고등으로 진전하면서 점차 상호의 상태를 달리한다고 주장하는 진화론(evolution) 이 있다.
이 이론은 무신론(atheism) 이나 유물론(materiaism) 에 기초한 관념이기 때문에 유신론(theism) 적 입장과는 판이하게 견해를 달리하는 철학적 이론에 불과한 것이다.

4) 하나님은 예정을 이루신다.

롬 8:29 ~ 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정하신대로 구원할 자를 구원하시고 멸망할 자를 멸망시키시는 사역을 하신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백성을 선택하시고 나머지는 버리시기로 예정하신 뜻을 따라 이루어 가시는 섭리과정에서 그의 전능성과 주권성은 물론이지만, 특히 성실성과 영원성과 자비성 등의 속성들을 아주 진하게 나타내어 주고 계신다.

하나님의 예정섭리는 창세전 영원에서 계획이 된 것이기 때문에 현상세계에서는 현상적인 것으로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알고보면,
하나님께서 성실성에 기초하여 예정하신 것을 이루어 주시고,
영원성에 기초하여 영원한 예정을 영원에서 이루시며,
자비성에 기초하여 독생자를 보내셔서 예정대로 인간을 구원해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정을 이루시는 섭리가 주로 택자들을 구원하시는 사역에 집중되고 있어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창세전 예정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전능성과 주권성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혹자들은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과 인간이 합력해서 이루는 공동의 작품인 것으로 오해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구원은 철저히 하나님 자신의 단독적 사역이시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사물을 작정하시는 가운데 인간의 구원과 멸망을 예정하셔서 구원으로 예정된 자를 모든 사람 가운데서 지명해 부르시고 중생케 하셔서 회개하고 믿게하여 의롭다하시고 양자로 삼으셔서 성화가 이루어지게 하시며 끝까지 지켜 주셔서 영화롭게 부활에 참여하게 하여 영원한 구원을 누리게 하시는 것이다.

구원의 섭리과정은 어느 하나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것은 없다.
오직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에 의한 절대 주권적 섭리로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누구나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주기로 작정된 자들만 믿을 수 있는 것이며(행 13:48) 믿음은 모든 자의 것도 아니다.(살후 3:2)

믿음은 구원의 근원적인 조건은 아니다.
구원의 근원적인 조건은 하나님의 창세전 예정이며,
믿음은 하나의 지엽적 조건일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정에 의한 구원은 그의 자비성에 기초한 은혜의 선물인 것이다.(엡 2:8)

출처 : 하나님(Logos)의 존재와 속성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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