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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경적 기독교*2* (기독교 성경관)

김믿소사 2007. 7. 7. 17:00

제 2 장, 기독교 성경관

 

1, 성경관의 중요성

 

1) 역사적 측면에서 중요하다.

2) 교리적 측면에서 중요하다.

 

2, 성경의 필요성

 

1) 하나님을 아는데 필요하다.

2) 구원을 얻는데 필요하다.

 

3, 성경의 내용

 

1) 하나님의 언약 내용이다.

2) 하나님의 성취 내용이다.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 벧후 1;20 ~21 *

 

앞서 서론에서는 기독교가 어디까지나 성경적이어야 하는데 현대 기독교는 성경적이지를 못하고 변질되어 가고 있음을 문제점으로 지적하였다.

이렇게 지적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분명한 해답을 줄 수 있는 기준이 설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객관적인 기준이 설정되지 않으면 각자의 주관에 따른 주의 주장만을 고집하는 비생산적 토론에 머무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 진리의 원천은 성경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곧 기독교 진리의 기준이 된다.

현대 기독교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들의 원인은 진리의 기준이 흔들리는데 있고, 진리의 기준이 흔들리는 원인은 성경관이 분명하지 못한데 있는 것이다.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고 혼미를 거듭하는 현대 기독교를 위기의 늪에서 건져내기 위해서는 기독교 진리의 기준이 되는 성경에 대한 올바른 관의 정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선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먼저 성경관의 중요성을 알아보고 다음은 성경의 필요성에 이어 성경의 내용을 대략 정리해 봄으로써 올바른 성경관 정립을 꾀하려 한다.

 

1, 성경관의 중요성

 

딤전06:0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딤전06:04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딤전06:0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성경과 기독교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그것은 성경없이 건전한 기독교는 기대할 수 없고 성경대로 믿는 신앙만이 올바른 기독교 신앙이기 때문이다.

 

현대 기독교가 점점 사이비화 되어 가는 근본 원인은 성경관에 대한 오해에 있다.

그러므로 성경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무리가 아니다.

이와 같은 성경관의 중요성이 여러가지 측면에서 고찰될 수 있겠으나 역사적 측면과 교리적 측면에서 그 중요성이 강조된다.

 

1) 역사적 측면에서 중요하다.

 

딤후04:0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딤후04:0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딤후04:0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엄밀하게 따지자면 기독교 역사는 예수 초림을 중심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로 분류된다.

예수 초림 이전의 유대교는 기독교의 모형과 그림자였다면 예수 초림 이후의 기독교는 모형과 그림자가 아닌 실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성경관의 중요성을 역사적 측면에서 살피는데 있어서는 예수 초림 이후의 약 2 천여년 간의 교회사만을 그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

 

기독교가 약 이천여년 간의 역사를 흘러 오면서 오늘의 모습으로 탈바꿈 되어지기까지는 대략 5 세기를 주기로 해서 매우 중요한 교리적인 투쟁이 있어왔다.

 

기독교 초기에는 기독론에 대한 논쟁이 치열한 시대였다.

그 논쟁의 초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인간이냐 하나님이냐 하는 것이였다.

결과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참 사람이며 참 하나님이라는 결론과 함께 여타의 주장자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말았다.

 

중세 전기에는 교회론에 대한 논쟁이 치열한 시대였다.

4 세기 콘스탄틴 로마 황제의 기독교 자유선언과 함께 로마교회의 비대화에 힘입어 교회관의 논쟁은 가중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교회관에 대한 논쟁들이 있기는 했었으나 4 세기를 지나 6 세기 후반, 로마교황 그레고리 I 세 시대에 이르러 그 절정에 오르기 시작하여 11 세기 중엽 동서교회의 분리로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중세 후기에는 구원론에 대한 논쟁이 전례없이 치열했던 시대였다.

십자군 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새로운 학문운동의 결과로 이루어진 스콜라신학(Scholasticism)에 힘입어 교황권위의 상승과 함께 전형적인 구원론 교리가 구체화 되었다.

스콜라신학에 있어서의 구원이란, 은혜의 분배자인 교회가 성례를 통하여 실재론적 은혜를 베풀어 주는 자만이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시작된 구원론에 대한 논쟁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 라는 말씀에 힘입어 일어난 16 세기 루터의 종교개혁 운동을 기점으로 최고 절정에 달했던 것이다.

 

종교개혁 이후, 근세에 이르러서는 성경관에 대한 논쟁이 끊일줄 모르고 계속되어 오고 있는 실정이다.

 

종교개혁 초기에는 로마교회 교황의 권위 대신 성경의 권위가 최고에 달한 시기였다.

 

그 후 개혁운동의 열기가 식어져가면서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을 가하기 시작하고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서의 절대 진리라는 사실에 대하여 회의적인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성경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각종 종파들이 파생되게 되었다.

따라서 다양한 신학적 주장이 속출하게 되고 잡다한 신앙형태의 사이비적 신앙운동이 현대 기독교를 강타하게 된 것이다.

 

현대 기독교 안에 크게 형성된 성경관은 여러가지로 견해를 달리하고 있는데 각각 그 특성을 따라 몇 가지로 분류가 가능하다.

 

첫째는,

성경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성경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그 외에도 로마교회가 만든 교리나 교황의 메시지와 같은 것, 또는 신비주의자들이 받은 계시나 예언 등의 내용이 모두가 성경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음은,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도 있다는 인본주의 신학자들의 견해이다.

 

이들 견해에 의하면 성경 66 권 모두가 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그 가운데 비과학적인 것, 비이성적인 것, 비도덕적인 것, 또는 전설이나 신화 등을 제외한 더러의 내용들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주장이다.

 

그 다음은,

성경은 기독교 경전이라고 하는 신복음주의자들의 견해이다.

 

이들 견해에 의하면, 종교의 각 종파마다 경전을 가지고 있듯이 기독교도 성경을 경전으로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주장은 성경을 불교의 대장경이나 유교의 사서 오경, 또는 회교의 코오란과 같은 경전의 일종으로 보는 것이다.

 

마지막은,

성경만 절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정통 보수주의자들의 견해이다.

 

이 견해는 가장 성경적인 견해로서 신구약 성경 66 권은 일점 일획도 더하거나 덜할 수 없는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말씀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올바른 성경관이 점점 퇴색되어져 간다는데 있다.

 

㉠ 성경도 하나님의 말씀이다 - 스콜라 신학, 신비주의신학.

㉡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도 있다 - 인본주의신학.

㉢ 성경은 기독교 경전이다 - 신복음주의신학.

㉣ 성경만 하나님의 말씀이다 - 정통보수 개혁신학.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올바른 성경관 정립은 현대 기독교에 있어서 역사적 측면에서 볼때 그 중요성이 매우 큰 것이다.

 

2), 교리적 측면에서 중요하다.

 

벧후01:20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벧후0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기독교 교리와 성경관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왜냐하면 어떠한 성경관에 의하여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교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교리가 달라진다는 것은 곧 신앙이 달라진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말이다.

 

교리라고 하는 것은 성경을 근원으로 하는 것인데 성경의 해석여부에 따라 신앙이 달리 나타나고 그 신앙의 결과로 신앙의 조항들인 신조가 이루어지며 그 신조를 구체화 해서 하나의 논리적 체계를 이루므로 교리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는 판이한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교리체계가 있다.

그것은 타락한 인간 이성을 기초로해서 만들어지는 경우이다.

 

기독교 교리사를 살펴보면 그 시대의 성경관이나 성경해석에 대한 견해에 따라 여러가지 주장과 논리형태의 교리가 형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신약교회 초기에는 사도시대 이후 속사도들이나 교부들은 비교적 사도적 신앙을 유지 발전시켜 오면서 사도들이 전해 준 성경에 기초하여 신조를 만들어 가르치고 교리화하는데 주력을 했다.

그러나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미숙한 부분도 많고 해석방법 역시 미숙했기 때문에 신조나 교리상 미숙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그래도 성경이 하나님의 정확무오한 말씀이라고 받아들이는데는 아주 철저했다.

 

중세기에는 교리의 성격을 전혀 달리하는 기독교 신앙의 암흑시대였다.

 

로마 교황 그레고리1세의 즉위와 함께 중세 카톨릭의 전형적인 교회중심 또는 교황중심의 교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성경을 기초로 삼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중세 카톨릭의 변형된 특유의 교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이 아닌 인간의 이성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이같은 교리는 성경에 근거한 신학이라기 보다는, 한낱 인간 이성의 산물인 철학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교리제조 작업은 11세기에 일어난 스콜라 신학운동이 더욱 부채질하기 시작했다.

이 신학 운동의 주된 과제는 첫째가 교회 교리와 인간 이성을 조화시키는 일이고, 또 하나는 교리를 체계화 시켜 하나의 완전한 신학으로 만들어 내는 일이었다.(참고 딤전 6;20)

 

중세시대의 교리형성에 있어서 엄청난 과오를 범하게 된 근본 원인은 성경관의 오해에서 찾을 수 있다.(마22;29)

 

근세에 이르러서는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올바른 성경관의 재정립과 더불어 성경해석학의 발전이 이루어져서 상당히 건전한 성경해석이 가능해지면서 성경에 근접한 교리가 만들어지고, 이에 따라서 하나님 절대주권 중심, 하나님 영광중심의 방대한 개혁신학 원리가 잡혀지게 된 것이다.

이 작업은 종교개혁자 루터(Luther)이후, 죤 칼빈(John Calvin)에 의하여 구체화 되고 발전 계승 되었다.

 

특히 죤 칼빈의 성경강론과 그의 기독교강요 저술은 건전한 기독교 교리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남긴 것이다.

이같은 눈부신 업적의 원인은 어디까지나 성경관의 바른 견해에서 기인되었다.

그런데 근래에 이르러서 성경관의 다양한 변화와 더불어 성경해석학에 대한 견해 차이로 신앙의 형태는 물론 신조 및 교리가 달라지고 따라서 신학의 혼돈시대를 맞아 현대 기독교는 미궁을 헤매여야만 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초세 - 성경 ⇒ 해석 ⇒ 신앙 ⇒ 교리 ⇒ 초대교회

중세 - 이성 ⇒ 교리 ⇒ 신앙 ⇒ 성경 ⇒ 로마카톨릭

근세 - 성경 ⇒ 해석 ⇒ 신앙 ⇒ 교리 ⇒ 개혁교회

 

이상에서 살펴 본 바대로 성경관은 교리적 측면에서 볼 때 현대 기독교에 있어서 그 중요성은 매우 큰 것이다.

 

2, 성경의 필요성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요 20;31 *

 

올바른 성경관을 정립하는데 있어서 성경의 필요성이 무엇인가를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성경의 필요성을 깨닫는 만큼 성경의 가치로움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건전한 기독교는 왜 성경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하여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 필요성이 고찰될 수 있겠으나 인간측면에서의 필요성을 중심으로 그 해답을 구해 보기로 한다.

 

1) 하나님을 아는데 필요하다.

 

롬 1;20 ~ 23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게치 못 할찌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의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인간들 가운데 하나님을 직접 본 자는 아무도 없다.

물론 신이시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볼 수도 없는 하나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안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혹자들은, 하나님은 알 수 없는 존재라고 하여 불가지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 창조하셨을 때는 하나님과 인간이 직접 만나 대화도 하고 만나도 볼 수 있는 신령한 몸으로 인간을 지어 놓으셨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분부를 어기고 불순종한 결과 타락하여 저주의 몸을 입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대면할 수도 없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심으로 나타내셨으나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피조된 세계에도 저주가 덮혀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가 없게 되었고, 따라서 피조만물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을 얻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일반적인 하나님의 계시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로서의 성경이 인간에게는 절대로 필요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나님 자신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주시는 계시는 크게 두가지로 분류된다.

계시의 성질상으로 보아 하나는 일반계시이고 또 하나는 특별계시인 것이다.

 

일반계시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와 일반적인 모든 섭리를 통하여 주어지는 계시를 말한다.

예를 든다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땅과 하늘, 인간을 비롯한 동식물, 그리고 해, 달, 별 등 온갖 천체와 이들에 대한 생성과 운행 등을 들 수 있다.

이같은 것들은 일반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인간 누구나가 받아들일 수 있기는 하지만 저주가 덮혀진 상태라서 일반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계시는 아니다.

 

특별계시는 일반계시와는 달리 특별한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정한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는 계시인데 그 내용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특별계시로서의 성경에는 하나님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다양한 방법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경없이는 하나님에 대한 참 지식을 얻는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일찍이, 철학이 하나님에 대한 참 지식을 얻어 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철학이 자기 나름의 신을 만들어 내기는 했으나 영원자존하신 하나님에 대한 참 신지식을 얻지는 못했다.

도리어 후대에 이르러서는 철학이 신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꺼리는 상황까지 이르고 말았다.

알고보면 철학이란 일반계시에 대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반계시의 자료들이 모두가 저주가 덮혀지고 파괴되었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신에 대한 참 지식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지식하는 존재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특수한 방법에 의하여 생령으로 하나님의 형상따라 지은바 된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지식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렇게 지식하는 존재로 지음 받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알아야 할 대상은 당연히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모든 지식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 누구도 하나님을 아는 근본적인 지식 없이는 어떠한 참 지식도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자연과학이나 인문과학에 대한 부분적인 토막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이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부분적인 토막지식은 참 지식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종교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성경(특별계시)을 깨닫는데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2) 구원을 얻는데 필요하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기독교는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소망하는 종교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유일한 인간에게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셔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깨닫고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는 길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을 믿고 구원에 이르는데는 무엇보다도 하나님 자신의 계시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특별계시(성경)가 글로 이루어지기 전에도 인류 가운데서 구원할 자들에게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하나님 자신을 특별히 계시해 주셨다.

예를 들면, 에덴동산의 아담에게는 하나님께서 직접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고, 아벨에게는 하나님께서 제물을 열납해 주셨고, 에녹에게는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셨고, 노아에게는 방주를 통해 홍수에서 구원해 주셨고,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어 복의 근원이 되게 해 주셔서 하나님 자신을 계시해 주셨다.

 

그 후,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는 모세와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 자신을 계시해 주셨으며 신약계시 시대에는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셔서 그리스도의 직임을 수행하심으로 하나님을 계시해 주신 것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자기계시는 모두가 택한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는 특별한 계시이다.

이러한 특별한 계시의 내용을 문서화한 것이 곧 신구약 성경이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믿어 구원에 이르는데는 특별계시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이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세상에 오셨다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후 승천하신 복음의 사건으로 절정을 이루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사도들을 통하여 완성시키셨다.

그 후로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의 특별계시는 주시지 않는다.

그것은 일점 일획도 더하거나 덜하지 못하도록 분부하시리 만큼 하나님을 알고 믿어 구원얻기에 완전하고 충족하게 계시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말씀 이 외에 또 다른 특별계시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믿어 구원에 이르려는 자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성경이 필요한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으며(히 4;12),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딤후 3;15)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딤후 3;17)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는 것은 성경 내용이 하늘의 신령한 지혜, 즉 특별계시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아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이며 세상 지혜가 아니라 하늘로서 온 참 지혜이신 예수를 아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요 17;3)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곧 구원이며 영생이라는 말이다.(요 5;39 참고)

 

기독교는 철저히 지식의 종교, 또는 지혜의 종교이다.

알지 못하는 것을 신앙하는 무지한 맹신의 종교가 아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 또는 그의 보내신 자 예수를 아는 지식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게하기 때문에 구원을 소망하는 자들에게는 성경의 필요성이 절대적이다.

 

성경의 필요성

 

㉠알고 믿어 구원에 이르기 때문에

㉡구원얻게 하는 유일한 계시이므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므로

 

※ 구원방법 - 특별계시(성경) → 신지식 → 신앙 → 구원(영생)

 

기독교는 하나님을 알고 믿어 구원에 이르는 종교인데 특별계시인 성경만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계시이며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므로 인간이 구원을 얻는데 있어서 성경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3, 성경의 내용

 

눅 24;44 ~ 45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기독교 성경관을 올바르게 정립하는데 있어서 성경의 구체적인 내용을 개괄적으로라도 살펴보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그것은 성경 자체의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올바른 성경관이 정립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바대로 성경관의 중요성이나 성경의 필요성 등을 통해 이론적으로 아무리 논리를 전개해간다 할지라도 성경 내용 자체의 확실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면 모두가 무모한 일이 되고 만다.

도대체 성경에는 어떠한 내용이 담겨져 있기에 그렇게 중요하기도 하고 그렇게 필요하기도 하다는 말인가?

 

신구약 성경은 얼핏 보기에는 구약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 같고, 신약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의 행적과 교훈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갖게 마련이다.

그러나 신구약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예수님과 사도들의 행적과 교훈의 차원을 넘어선 심오한 신적 계시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데 놀라움을 금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성경을 누구나 옳게 깨닫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존재는 물론, 그의 능력과 권능을 믿고 찬양드리지 않을 자가 없고 구원에 이르지 못할 자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와 같이 신비로운 능력을 담고 있는 성경은 하나님께서 언약하시고 언약하신 대로 이루어 가시는 섭리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1) 하나님의 언약 내용이다.

 

출 6;2 ~ 5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로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가나안 땅 곧 그들의 우거하는 땅을 주기로 언약하였더니 이제 애굽 사람이 종을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구약성경은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언약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인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복을 주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할 것과 땅을 정복할 것과 바다나 공중이나 땅의 모든 생물을 다스릴 것 등을 명하시므로 언약하신 것이다.(창 1;28)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따먹지 말라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일을 따먹고 타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타락과 관계없이 아담에게 복으로 주신 언약은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계시하신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 지방에서 불러 내어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시면서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이 번창할 것과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가나안 땅을 주실 것과 자손으로 큰 민족을 이루어 다스리게 하실 것 등을 복으로 언약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오랜 세월을 거쳐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대로 빠짐없이 다 이루어 주셨다.

이것은 아담에게 언약하신 것은 아담이 비록 타락을 했다 할지라도 반드시 이루시는 여호와이심을 계시하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에게 모형적이며 그림자적이요 현세적인 것으로 언약하시고 이루어 주신 하나님의 섭리이다.

이같은 하나님의 섭리 내용이 소위 구약의 역사서이다.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등 이스라엘 열조들에게 자손과 땅과 통치를 언약하시고 그 후손을 보호하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 열조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들은 하나하나 차례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신다.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의 내용은 이스라엘 열조에게 자손들의 번창을 복으로 주신 첫번째 언약을 성취해 주신 섭리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여호수아나 사사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조에게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살도록 복으로 주신 두번째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해 주신 내용이다.

 

룻기에서부터 에스더까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조에게 큰 민족을 이루어 다스릴 것을 복으로 주신 세번째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해 주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에서부터 에스더까지 구약의 역사서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조에게 세가지 복으로 언약하신 것들을 모두 다 성취해 주신 섭리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등은 일반적으로 구약의 성문서라고 한다.

이같은 성문서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조에게 언약하신대로 자손을 번창케 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케 하시고 다윗왕조를 세워 다스리도록 성취해 주신 하나님을 구약의 성도들이 찬양한 내용이다.

 

욥기는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권세도 주관하시며, 욥을 망하게도 하시고 흥하게도 하시는 전능자이심을 찬양한 내용이다.

 

시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조에게 언약하신 것들을 다 이루어 주신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구약의 성도들이 찬양한 내용이다.

 

잠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조에게 언약하신 대로 나라를 세워 다스리게 하시는 참 주권자 되심을 솔로몬 왕이 찬양하는 내용이다.

 

전도서는 인간이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은 헛되지만 하나님께서 언약하시고 이루시는 행사는 영원하심을 솔로몬이 찬양한 내용이다.

 

아가는 하나님께서 한번 이스라엘 열조에게 하신 사랑의 언약은 절대로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솔로몬이 찬양한 내용이다.

 

욥기에서 아가까지 구약의 성문서에는 이스라엘 열조에게 언약하시고 언약대로 이루어 주신 하나님 여호와에 대한 구약의 성도들의 찬양이 기록되어 있다.

 

이사야에서 말라기까지에 이르는 선지서는 이스라엘 왕정 시대에 나타나실 하나님을 선지자들이 예고해 준 예언서들이다.

 

이사야에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백성들을 깨닫고 돌이키게 하시려고 때리시고 싸매어 주신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이사야가 예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예레미야에는 하나님께서 멸하시고 남겨 주신다는 것을 백성에게 예레미야가 예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에스겔에는 하나님께서 흩으시고 모으신다는 에스겔의 예언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다니엘에는 하나님께서 헐으시고 세우신다는 다니엘의 예언의 내용 등이 기록이 되어 있으며,

그 외에 호세아에서부터 말라기까지의 선지서들도 모두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등과 같은 선지서 내용들과 흡사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구약의 역사서나 성문서 또는 선지서 등 구약성경 전체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언약하신 것은 아담의 타락과 관계없이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을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섭리와 구약성도들의 찬양과 선지자들의 예언을 통하여 언약하신 내용이다.

따라서 이들 모든 언약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은 약속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시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참으로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

 

2) 하나님의 성취 내용이다.

 

요 19;28 ~ 30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이 구약에서 약속한 메시야 즉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구약에서 여러 모양으로 주어진 언약들은 모두가 그리스도에게로 집약이 된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본래의 언약은 아담의 타락과 관계없이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 주신다.

이렇게 이루실 것을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 섭리나 찬양, 또는 예언 등을 통하여 언약해 주셨던 것이다.

따라서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의 언약에 대한 성취 내용으로서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 자신과 그가 승천하셔서 오순절에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보내 주신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확실하게 증거해 준다.

 

사복음서는 예수님 자신이 구약에서 언약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내용이다.

 

마태복음에는 그리스도의 직임을 중심으로 예수님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직임은 세가지가 있는데 선지직, 왕직, 제사직 등이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이 세가지 직임을 가지고 계시는 그리스도이심을 자세히 증거해 준다.

따라서 마태복음에는 구약의 예언대로 이루신 예수님, 선지직을 수행하시는 예수님, 왕직을 증거하시는 예수님, 제사직을 감당하시는 예수님 등이 소개되고 있다.

 

마가복음에는 그리스도의 신분을 중심으로 예수님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의 신분에는 낮아지심의 신분과 높아지심의 신분이 있는데 마가복음은 이와 같은 예수님의 신분에 대하여 자세히 증거해 준다.

그 내용은,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나 버림받은 자가 되었다가 다시 영광스러운 신분의 소유자가 되셨다는 것으로 요약이 된다.

이러한 신분으로 보아 예수님은 분명히 그리스도이시다고 마가복음은 증거해 준다.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사역을 중심으로 예수님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해 준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구속주로서 주로 속죄사역을 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구속주로서의 사역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속죄주되심과 속죄능력 및 통치능력에 대한 것과 천국에 대한 교훈, 그리고 속죄주로서의 임무 수행에 대한 증거들이 자세히 소개된다.

 

마지막으로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본성을 중심으로 예수님 자신이 그리스도 되심을 증거한다.

예수님의 본성은 어디까지나 신성이시다.

즉 하나님이시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신성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기 위해서 아버지께로부터 오셨다가 아버지께로 가시는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사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직임과 신분과 사역과 본성 등을 들어서 예수님 자신이 구약에서 언약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한 사실을 확인했다.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내용에는 승천하신 예수께서 오순절에 보내주신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사역과 교훈이 기록되어 있다.

 

사도행전에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대로 성령께서 오셔서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셔서 교회를 세워 가시는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예수님이 구약에서 언약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해 준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은 성령세례 주실 것과, 땅 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실 것과 세상 마지막 때에 재림하실 것 등이다.

이 약속들 가운데 성령세례는 오순절날에 이루어졌고, 땅 끝까지 복음증거는 현재 이루어져 가고 있고, 예수님 재림은 장차 이루어질 약속들이다.

 

로마서에서부터 빌레몬서까지의 바울서신은 세워져 가는 교회를 성령께서 바울사도를 통하여 진리로 먹이셔서 견고하게 자라도록 해 주시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 되심을 증거해 준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시며 머릿돌이 되신다.

그러므로 교회가 견고하게 자란다는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 되심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된다.

 

히브리서에서부터 유다서까지에는 예수님의 복음만이 참 진리이며 참 생명임을 강조하면서 모든 거짖과 이단을 경계하여 싸울수 있도록 성령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교훈하시고 경계하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화평을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분쟁을 일으키려 오셨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몸된 교회의 싸움의 대상은 혈과 육이 아니라 어둠과 비진리 그리고 이단과의 싸움이다.

 

요한계시록에는 선한 싸움에 대한 최후 승리의 모습이 장엄하게 소개된다.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가 선한 싸움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보살피시고 세상 끝날에 심판을 통해 모든 불의의 권세, 사단의 권세들을 진멸하시고 최후에 승리를 거두신 후 영원토록 통치해 주실 자이심이 요한계시록에 증거되고 있다.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구약에서 언약하신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심이 분명하다.

참으로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신 성령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구약은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증거하고 신약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한다.

 

다시 한번 총 정리를 한다면

하나님께서 여호와이신 증거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라는 결론이다.

결국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은 여호와이심을 증거하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내용을 담고 있는 말씀이다.

출처 : 하나님(Logos)의 존재와 속성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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