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서 론
1, 제목에 대한 설명
1) 계시종교로서의 기독교라는 뜻이다.
2) 절대진리로서의 기독교라는 뜻이다.
2, 현대 기독교의 문제점
1) 기독교가 무속신앙화 되어간다.
2) 기독교가 신비주의화 되어간다.
3) 기독교가 인본주의화 되어간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 빌 3;7-8 *
기독교는 오늘날 세계적인 최대의 종교로 부각 되었다.
그런데 기독교는 각 나라의 문화적 특성에 따라 그 모양을 달리 하기도 하고 개개인의 주관적 사상이나 교육 수준에 따라 각양 각색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기독교의 뚜렷한 객관적 표준을 상실한 채, 각 나라와 개인의 주관적 표준을 따르는 결과로 인하여 나타난 것이다.
세계나 국가는 그만 두고라도 한 지방, 또는 한 가정 안에 있어서까지라도 같은 기독교 신자라고 하면서 신앙과 신학을 달리 할 뿐만 아니라 진리에 대한 주장이 다르고 신앙생활의 방법이 전혀 판이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한 국가 안에는 수백개에 이르는 교파가 있어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혼선 마저 일으키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문제는 제기되어져야 하며 이 문제에 대한 해답 역시 반드시 구해져야 한다.
본서는 기독교의 핵심적인 진리를 간단 명료하게 제시함으로써 그 우월성과 절대성을 확인하여 기독교적 신앙을 가지게 하려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먼저, 서론으로 본 장의 제목에 대한 설명을 하고 현대 기독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 다음, 본론적인 내용을 논하려고 한다.
1, 제목에 대한 설명
딤후03: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딤후03: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딤후0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0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0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본서의 제목은 "성경적 기독교" 이다.
즉, 기독교는 어디까지나 성경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너무도 당연하고 옳은 말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치를 못하다는데 이 제목으로 정하게 된 동기가 있다.
성경적 기독교라는 말은 그 이면에 성경적이 아닌 기독교도 있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는 말이다.
기독교가 성경적이 아니라는 것은 다시 말하면, 사이비 기독교라는 말과 같은 뜻이 된다.
기독교가 성경적이어야 하는 까닭은 기독교가 성경을 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에 의하여 기독교가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제목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몇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1), 계시종교로서의 기독교라는 뜻이다.
행17: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행17: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종교를 국어사전에서는 "무한 절대의 초인간적인 신불을 숭배하고 신앙하여, 이로 인하여 선악을 권계하고 행복을 얻고자 하는 일" 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모든 종교 (Religion)를 일반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종교는 그 특성상 크게 둘로 분류가 가능하다.
그 하나는 철학적 종교이고 다른 하나는 계시적 종교이다.
철학적 종교는 우주만물과 만사에 대한 인간들의 경험과 사색에 기초하여 인간 자신의 행복을 목적으로 역사 과정 속에서 복을 받으려는 욕구나 진리를 찾으려는 동기로 부터 시작된 무속을 포함한 모든 이방종교를 일컫는 말이다.
이같은 철학적 종교는 경험을 주된 기초로 삼는 무속종교와 사색을 주된 기초로 삼는 이치종교로 구별이 된다.
무속은 무당의 풍속을 말하는데 인간들이 삶의 터전인 자연만물의 위협 앞에 극복보다는 순응하려는 태도로 부터 출발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고기잡이하는 어부가 바다의 위협이 있을 때, 자신의 허약함을 느끼고 바다 신에게 무당을 통해 생명의 보호를 의탁하는 행위가 곧 무속종교 행위의 일종이다.
이치종교는 인간이나 역사 그리고 우주와 세계에 있어서의 온갖 이치를 주로 사색에 의해 해결하려는 노력으로부터 기인된다.
그 한 예가 인간이 출생하고 늙고 병들어 죽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랜동안의 사색끝에 이치를 터득했다고 하는 것이 불교의 동기가 된 경우이다.
결국, 철학적 종교는 무속종교나 이치종교를 모두 포함한 것으로서, 인간 자신의 필요에 의하여 인간 자신이 만들어 낸 역사의 산물이며 우상종교에 지나지 않는다.
계시적 종교는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만사를 섭리하는 하나님의 계시(Revelation)에 기초하는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복 주심으로 인간과 관계를 맺음으로부터 출발된 기독교를 의미한다.
혹자들은 기독교가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후부터 시작된 역사과정 속에서의 산물로 아는 이들이 있으나 그것은 오해에 불과하다.
기독교의 시작시기는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독교 역시 이성을 앞세우는 기독교와 계시를 앞세우는 기독교로 분류가 된다.
이성(Reason)은 이치에 따라 사리를 분별하는 성품이나 합리적 사유 능력을 말하는데, 이러한 인간의 이성기능으로 인간 자신의 행복을 목적으로 하여 계시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비판을 통하여 체계화한 진리를 수납하고 믿는 이성적 기독교가 있는가 하면,
그와는 정반대로 인간의 이성적 판단과는 관계없이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하나님의 계시진리를 수납하고 믿는 계시적 기독교가 있다.
엄밀하게 따진다면 이성을 앞세우는 기독교는 계시종교인 참된 기독교가 아닌 철학적 종교중의 하나인 이치종교와 유사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계시적 기독교가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하는 것과는 달리, 이성적 기독교는 인간의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것에서도 더욱 그 차이점은 명백하다.
결국 계시적 종교는 명칭상으로는 전체 기독교를 말하지만 실질에 있어서는 이성을 기초로 하는 사이비적인 기독교를 제외하고 일컫는 말이다.
성경적 기독교라는 것은 앞에서 말한 철학적 종교가 아닌 계시종교로서의 기독교라는 뜻이다.
그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계시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철학적인 타종교들 보다 우월한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절대진리로서의 기독교라는 뜻이다.
골02:0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요0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요0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Truth)를 국어사전에서는 "참된 도리, 또는 누구나 인정하여야 할 보편 타당한 지식" 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진리를 주관적이며 보편적인 입장에서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객관성을 지녀야 하고 절대성을 유지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진리에 대한 관념은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으로 분류해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즉 주관적 진리와 객관적 진리로 분류해서 개념을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관적 진리는 인간이 주체가 되어 보편 타당하다고 인정하는 지식을 말한다.
이 진리인식에 있어서는 인간의 주관적 경험을 진리인식의 근본으로 하는 경험론(empiricism)과 인간의 주관적 사색을 진리인식의 근본으로 하는 관념론(idealism)으로 구별이 된다.
경험론은 이론의 중요성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인간 자신의 경험을 제일로 하는 경험위주의 진리인식 태도를 말하고,
관념론은 구체적인 현실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주관적 가치에 따라 이론화한 추상적 생각을 제일로 삼는 생각위주의 진리인식 태도를 말한다.
경험론은 인간의 경험이 너무도 제한적이며 부분적이기 때문에 진리인식에 있어서 소극적이다 못해 독선에 이르고,
반대로 관념론은 인간의 추상적인 관념의 범위가 너무도 크고 넓다 못해 그 한계를 정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진리인식에 있어서 적극적이다 못해 궤변(sophism)에 이르게 된다.
결국 주관적 진리체계인 경험론이나 관념론은 모두가 인간 자신의 주관적 경험이나 생각을 진리인식의 기초로 삼기 때문에 독선 아니면 궤변에 빠지게 된다.
객관적 진리는 인간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이나 사색과는 무관하게 별도로 독립되어 있는 진리를 말한다.
이같은 객관적 진리는 관념론과 계시론으로 구분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객관적 관념론(objective idealism)은 관념의 타당성을 보편적인 주관이나 의식에 둠으로써 객관적 의의를 가지게 하지만,
객관적 계시론(objective revelatism)은 계시의 타당성을 절대적인 주관이나 의식에 둠으로써 객관적 의의를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객관적 관념론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어서 정치, 교육, 경제, 문화 등의 변동에 따라 보편적인 주관이나 의식이 변하기 때문에 관념 역시 변할 수 밖에 없다.
하나의 예를 들면, 유교적 문화권에서는 여필종부 사상이 보편적인 주관이나 의식으로 받아 들여지지만 서양문화권 아래서는 남녀동등 사상이 보편적인 주관이나 의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따라서 객관적 관념론은 변함이 없는 영원한 절대적 진리체계는 될 수 없다.
그러나 객관적 계시론은 어디까지나 절대적이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어디서나 변함이 없는 영원한 절대진리의 체계인 것이다.
결국 객관적 진리체계인 관념론이나 계시론은 모두가 객관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관념론은 보편적 주관에 의한 상대적인 객관성을 가진 가변적 철학적 진리체계에 불과하고, 계시론은 절대적 주관에 의한 객관성을 가진 불변적 종교적 진리체계인 것이다.
성경적 기독교라는 것은 바로 주관적 진리의 종교가 아닌 절대적 주관에 의한 객관적 절대진리로서의 기독교라는 뜻이다.
그것은 절대적 주관에 의하여 계시된 성경은 영원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절대진리로서의 기독교는 사색이나 경험에 의한 철학적인 타종교들 보다 우월한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현대 기독교의 문제점
요일02: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줄 아노라
요일02:19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시간은 많은 것을 변화 내지는 변질까지 시키는 경우가 많다.
기독교 역시 오랜 역사의 흐름과 함께 변화는 물론 변질이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16세기 종교개혁은 변질된 기독교를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역사적인 거사였다.
종교개혁이 일어난지 벌써 5세기가 가까워 온다.
그동안 시간의 흐름과 함께 기독교는 본래의 모습을 지키지 못하고 하치장에 버려진 타락한 역사의 쓰레기로 장식되고 오물들로 채색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현대 기독교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좀더 구체적이고 세분화된 문제들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1), 기독교가 무속신앙화 되어간다.
요04: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말을 믿으라 !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요0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종교적 신앙을 크게 분류하면 계시신앙과 무속신앙으로 정리된다.
이 구별은 신앙의 방법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원리에 있어서까지 확연히 구별된다.
계시신앙은 신의 계시를 깨달아 알고 믿는 신앙을 말한다.
기독교 신앙은 곧 계시신앙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계시의 내용을 담고 있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는 신앙이 바로 기독교 신앙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은 인간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나오는 자기 신념의 작용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성경)를 통하여 얻어지는 하나님 지식으로부터 결과되는 산물이다.
특별계시의 내용을 담고 있는 성경은 하나님을 계시하신 것이기 때문에 성경을 잘 읽고 바르게 해석만 하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과 자비하심 등의 영광을 알게 되며, 이렇게 알게 된 하나님 지식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불러 일으켜준다.
이러한 신앙이 곧 계시신앙이며 기독교의 순수한 참 신앙이다.
무속신앙은 무당의 풍속에 따르는 신앙을 말한다.
특히 자연신을 숭배하는 원시적 종교의 신앙을 말한다.
이 신앙은 신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기않고 삶 속에서 대하는 자연의 사물 현상을 신으로 알고 숭배하는 우상신앙인 것이다.
무속신앙의 특징으로는 신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과는 무관하게 신에게 정성스럽게 공을 쌓기만 하면 신이 복을 내려준다는 막연한 관념으로부터 출발이 된다.
그러므로 무속신앙은 맹목적인 것으로서 인간의 무지가 만들어낸 원시적 맹신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신앙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연을 접하며 살아가는 동안 자연으로부터 위협을 느낄 때 막연한 신의식을 가지게 되는데 이같은 신의식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인간내면 속에 형성되는 심리적 현상으로 나타난다.
기독교는 무속적 신앙을 가진 자들의 군집으로 변해가고 있다.
표면상으로 기독교 신자라고 하는 이들 대부분이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전능성을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생각보다는, 정성을 잘 드려서 많은 복을 받아 행복을 누려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자들이 더 많다는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복에 대하여 자주 언급하고 있다.
구약에서는 지상적이며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을 이스라엘 열조와 그 백성들에게 약속도 하시고 이루어서 누리게도 하셨다.
그러나 이같은 복은 신약교회 성도가 누려야 할 신령한 복의 모형과 그림자로서 천상적이며 내세적이고 신령적인 복에 대한 예언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복은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경외하게 하시기 위한 방편으로 주시는 것이다.
기독교 계시신앙은 하나님께로부터 영육간에 받은 바 복을 깨닫고 복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과 경배를 드리는 신앙인데 반하여, 원시적인 무속신앙은 알지도 못하는 신으로부터 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 신에게 정성스런 공을 드리는 신앙이다.
기독교적 계시신앙과 원시적인 무속신앙은 그 원리나 성질면에 있어서 판이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도 현대 기독교 교회 안에 원시적인 무속신앙이 체계화 되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 기독교는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를 안고 있다.
2), 기독교가 신비주의화 되어간다.
엡03:0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엡03:0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엡03:04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엡03:05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엡03:0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신비(Mystery)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보통의 이론이나 인식을 초월한 영묘하고 이상야릇한 비밀을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비는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신비는 그 특성과 내용에 있어서 복음적 신비와 세속적 신비로 엄격하게 구별이 된다.
이같은 신비의 두 부류는 공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데도 오늘의 교회 안에 엄연히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복음적 신비는 기독교 진리의 내용을 특성있게 표현하는 말이다.
기독교 진리체계인 성경은 하나님 자신의 비밀을 계시하신 내용을 담고 있다.
기독교는 성경에 계시된 복음적 신비의 진리를 믿는 종교라는 점에서 신비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복음적 신비는 아직도 알 수 없이 가리워진 신비가 아니라 이미 계시되었고 신,구약 성경을 통하여 알려진 신비이다.
복음적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의 예언대로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심으로 알게 해 주셨고, 사도들을 통하여 교훈하시고 약속해 주심으로 완전하게 드러내어 주신 것이다.
신,구약 성경은 복음적 신비의 내용을 담고 있는 보고이다.
이와 같이 구약에서 율법과 선지자를 통하여 알려진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과 죽으심,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확증이 되고,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성령에 감동된 사도들의 교훈과 약속들을 통하여 알려진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 승리와 통치를 통하여 확증이 된다.(엡 3;8-9)
세속적 신비는 비복음적 신비를 통칭해서 표현하는 말이다.
따라서 세속적 신비란 비성경적이며 비신앙적이고 비기독교적이다.
세속적 신비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한 원리나 사리에 있어서 경이롭게 불가사의 한 것으로 나타나는 사건들이다.
예를 들면, 마술이나 최면술, 또는 기사, 환상, 음성, 예언, 방언, 입신, 진동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세속적 신비들은 모두가 인간의 경험을 기초로 전해지는 신비들이다.
그리고 이같은 신비들은 무속종교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무속신앙가들 속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신비들이다.
특히 미개한 원시종교에서 주로 행해지는 신앙행위들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특별한 진리체계나 논리적인 근거도 없이 오랜동안의 심신 연마를 통하여 체득되는 신비로운 경험들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살후 2;6-13)
성경을 통하여 계시되고 알려진 복음적 신비의 기독교 진리가 세속적 신비주의자들에 의하여 더렵혀지고 변질되어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피조된 인간이 알아야 하고 또는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비밀은 일점 일획도 더하거나 덜함이없이 완전 충족하게 성경에 계시되어 있다.
다만 아직 과학으로 알아내지 못한 하나님의 창조능력의 신비만이 가리워진 채 남아 있을 뿐이다.
이같이 가리워진 하나님의 창조능력의 신비가 세속적 신비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사 40;12-14)
기독교는 가리워진 세속적 신비를 찾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이미 알려지고 찾아진 신비의 진리를 믿는 종교이며 기독교 신앙은 무지해서 맹신하는 신앙이 아니라 깨달아 알고 확신하는 신앙이다.(딤후 3;13-15)
현대 기독교 안에는 소위 성령운동, 기도원운동, 부흥회, 은사집회 등 다양한 명칭아래 세속적 신비에 해당하는 기괴한 행동들이 자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3), 기독교가 인본주의화 되어간다.
갈01:0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갈01:0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갈01:0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갈01:0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현대 기독교의 내면을 자세히 살펴 보면 철저히 신본주의적이기 보다는 인본주의적인 요소들이 너무도 많이 있다.
이것은 기독교가 오랜 역사와 함께 많이 변질되어져 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은 인본주의화 된 기독교를 신본주의화 시키는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로마교회는 철저히 인본주의화 된 교회인 반면에 개신교(Reformed Church)는 철저히 신본주의화 된 교회이다.
이와 같은 근본적인 차이점 때문에 구교와 신교는 서로가 갈라서야만 했으나 문제는 철저히 신본주의 바탕에 세워진 개신교안에 인본주의가 싹이 돋는 정도를 지나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 결실기에 이르고 있다는데 있는 것이다.
신본주의적인 기독교는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영광을 기본 원리로 한 계시중심 신앙을 지향한다.
즉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섭리에 의하여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목적으로 우주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심판하신다는 근본 원리를 따라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알고 신앙하는 계시중심신앙을 지향하는 것이 신본주의적 기독교이다.
인본주의적 기독교는 신본주의적 기독교와는 달리 인간의 자율(autonomy)과 인간의 행복(happiness)을 기본 원리로한 이성중심 신앙을 지향한다.
즉 인간 자신의 자율적 능력에 의하여 인간 자신의 행복을 목적으로 인간 스스로가 이상세계(Utopia)를 이룩할 수 있다는 근본 원리를 따라 인간 자신의 이성적 판단에 따르는 이성중심 신앙을 지향하는 것이 인본주의적 기독교이다.
모름지기 개신교를 중심한 현대 기독교 안에 인본주의적 신앙요소가 깊숙히 자리하고 있어 위험 수위를 높혀가고 있다.
소위 자칭 정통보수교회라고 자처하는 교회 안에도 인본주의적 신앙요소의 독소가 깊이 침식되어 교회의 심장부를 부패시키고 있는 현실이다.
하나님의 열심이 아닌 인간의 열심이 강조되고, 하나님의 의가 아닌 인간의 공로주의적 의가 강조되며,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이 아닌 인간의 욕망에 의한 계획이 강조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적 판단이 아닌 타락한 인간의 이성적 판단이 강조되는 개신교 내부의 인본주의적 독성에 의한 부패상을 문제삼지 않을 수가 없다.
현대 기독교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 위기는 반드시 극복되어져야 한다.
하나님을 교수대 위에 올려놓은 현대인,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역사 밖으로 추방시켜 버린 현대인, 전능하신 능력으로 우주와 만물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망령든 무능한 노인영감으로 치부해 버린 현대인과 현대 기독교는 당연히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대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리고 그 자신들의 사악한 행위에 대한 응분의 형벌은 반드시 가해져야 한다.
그래서 현대 기독교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반드시 철저하게 극복되어져야 한다.
엡01:03
찬송하리로다 !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엡01:0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01:0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01:0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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